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찰스 G. 피니 글

미혹된 사람들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 19. 21:08




미혹된 사람들




(1) 현실적인 신자들의 악함에 관한 그릇된 주장들은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 설교자가 기독교인에 대해 "은혜는 적게 받고 악마에게서는 많은 것을

받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정의를 철저히 부인합니다.


그것은 거짓되고 파괴적입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존재라는 의견을 피력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큰 죄악을 초래합니다.


기독교인이 죄를 범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또 영적으로 눈을 뜬 신자들이

자신의 죄악 안에서 큰 사악함을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은혜와 생명을 비교할 때에 매우 겸손해지며 그 겸손함을 강력하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마귀만큼 악하다거나 그와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이 죄를 범할 때에 그 죄들은 대단히 악화시키는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합니다. 


그러나 마귀를 섬기고 살며 신앙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참 기독교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그릇되고 위험한 견해입니다. 그것은

도덕률 폐기론자라는 위선자들과 배교자들을 격려해 줄 뿐 아니라 

조소자들의 비판에 의해 그리스도의 명분에 큰 해를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에 반대되는

교리는 교회에게 대단히 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는 복음의

요구에 순종하려 하지 않으면서 특정의 관념들을 채택함으로써 자신이

경건하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로 교회를 채웁니다.



(2) 진리의 실천보다는 교리에 열광하며, 자신의 행위와 관련된 교리 보다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훨씬 강조하는 사람들은 도덕률 폐기론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받아들여 인정하고 사랑하지만 신앙심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설교를 듣든지 유익을 얻지 못하고 다만 추상적인 교리에서만 유익을

얻는 자들은 도덕률 폐기론자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이런 사람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으며, 신앙이란 일련의 관념들로 이루어진다고 여깁니다.



(3) 하나님의 속성, 존재 양식,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 등에 관해 듣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종교적 교리는 제외 시키고 종교적 관습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복음의 근본

교리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경건한 하며, 내면적으로는 일종의

시적인 감정에 비약을 합니다. 



(4) 바른 교리는 바른 태도를 갖게 합니다.


이단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의 신앙도 이단적입니다. 그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믿음도 이단적이 됩니다. 관념이나 

이론은 옳을 수도 있지만, 그 이론이나 관념을 실제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미 재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허겁지겁 살아가는 죄인을 보십시오.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이 사람이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단지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람의 태도로 볼 때 그는 자기가 죽을 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죽음이란 사고(思考)의 범주에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이 사람에게 언젠가는 죽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물론 내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죽는 것이니까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에는 그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로

하여금 정말로 죽을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면 그의 행동은 분명히 변할 것이며,

이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않고 저 세상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신앙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무엇을 믿게 되면 그 믿음이

그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가 행동을 조종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5) 교회는 오랫동안 지나치게 도덕률 폐기론적인 정책에 입각하여 행동해

왔습니다.


교회는 추상적인 교리에 집착하여 실천적인 교리를 등한히 했습니다. 

실제적인 교리 보다는 실제적이 아닌 교리 안에서의 정서를 강조해왔습니다.


오늘 교회의 신조들을 살펴보십시오. 교회의 신조들은 대체로 우리의 관습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교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공공연하게 불경하고 악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관습에 측면에서는 이단적일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의

생활이 복음에 일치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교회 안에서 훌륭한 지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관습적인 오류들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폭음, 안식일을 범하는 죄, 또는 노예제도 등의 죄에 교회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는 어찌 그처럼 광분하고 있습니까?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회심시키기 위해 효과적인 일을 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렵습니까?


언제쯤 교회가 정결케 되며 세상은 언제쯤이나 회심하겠습니까? 이단적인 

관습을 행하는 것은 그 신앙이 이단적이라는 증거라는 사실이 고정관념이 될

때에야 비로서 교회가 정결하게 되고 세상이 회심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의 관습에 있어서 복음을 부인하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선한

기독교인으로 행세하는 한 교회는 정결하게 되지 못하며 세상은 회심하지 

못합니다.



(6) 목회자가 신자들의 신앙상태를 잘못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실질적인 관습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추상적인 교리들에 관해

많은 설교를 하면, 신자들은 그 설교로 말미암아 영의 양식을 얻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 때 그는 신자들이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그들의 마음 속에 신앙심이 있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분명히 그러한 증거가 아닙니다. 그가 실천적인 교리들을 설교할 때에 신자들이

스스로와 관련하여 그 진리를 사랑하고 실천함으로써 사랑을 나타내야만 그 

진리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 목회자가 추상적이고 교리적인 설교를 하면 신자들이 좋아하고 실천적인

교리들을 강조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혹시 그들에게 신앙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저급한 신앙심입니다.


만일 공정하게 시험해 보아서 그들이 실천적 교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을 발견한다면, 그들에게는 신앙심이 없다고, 그리고 그들을 추상적인

정설을 믿는 죽은 신앙에 의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덕률 폐기론자

들이라고 판단해도 좋습니다.



(7)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근거로 하여 자신을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받아들인 것은 자기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진리입니다.


만일 그러한 신앙 고백자들에게 그들의 자만심을 깨뜨리고 속된 마음을 끊어버리게

될 진리를 제시한다면, 그들은 그 진리를 거부할 것입니다


교회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이 고백한 신앙은 그들의 행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구원의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신자들 모두가 경건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 - 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중에 설교를 통해 진리를 진실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나는

"실제적"인 설교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교리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

강연을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설교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와 교회가 각기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들을 행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주장하는 교리가 참된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증명하며 확신을 갖게 

하였는데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나타내

주는 증거가 될 것이며 나는 더 이상 그런 교회를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관한 지식이 늘어갈수록 그만큼 복음이 당신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습니까? 


어떤 실질적인 진리를 받아들여 그것을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적용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은혜 안에서 자라지 않으며 더욱 거룩해지지도 않고 복음의 영향력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입니다.


이 교회의 장로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각 가정의 가장들은 어떻습니까?

설교를 들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집에 돌아가서 실천합니까? 그것을 

마음으로는 받아 들이고 시인하지만 결코 실천하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돌아서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돌아서면 생김새를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 찰스 G. 피니의 [순종의 기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