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은혜 ♡ 글 50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 비유를 통한 마태의 의도 이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문제는 마태복음 저자가 이 비유를 어떻게 이해 하였으며, 왜 이 비유를 자신의 복음서에 수록하였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공관 복음서 저자들 중에 오직 마태만이 이 비유를 자신의 복음서에 수록하였 다는 점을 볼 때 마태복음서 저자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메시지와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였으며, 그리고 이 비유가 자신의 독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마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자기 당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를 쓸 그 무렵 유대교와 기독교는 심각한 갈등의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또한 박해와 바울 신학의 잘못된 ..

주를 경외한다는 것

주를 경외한다는 것 그렇다면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그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 무서워하는 대상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와 가까운 교제를 나누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모세는 그들을 곧장 시내산으로 데려 갔다. 그곳은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곳이다. 모세의 목적지가 약속의 땅이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모세가 바로에게 누누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모세가 무슨 이유로 그들을, 약속을 주신 당사자께 내보이기도 전에 약속의 땅에 들여놓고 싶었겠 는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그들 사이..

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함

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함 한편 조상 야곱의 우물에 매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가 생수를 약속한다 (요 4:10). 여인은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얻어 잘 살고 있는데, 길 가는 나그네가 물 한 모금 달라고 하더니, 정작 자기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한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래 세상에 사람으 로서 순전히 물리적인 관점에서 대답한다(오해). 시내 언약의 은혜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은혜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여인이 말하는 야곱의 우물을 이해하려면 우선 중동 사막지역의 오아시스를 생각해야 한다. 사막 지역에서 오아시스는 한 부족의 생명을 지탱한다. 야곱의 자손들(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야곱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은 그 조상 야곱이 준 우물, ..

은혜 위에 서 있는 삶

은혜 위에 서 있는 삶 지금 현제 그리스도의 두 오심 사이에서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계속되는 통치에 날마다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뿌리치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으로 상기시키는 하나님의 통치를 늘 받으려 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로 온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칭의'하면 '무죄 선언' 또는 '의인이라 칭함' 받았음만 생각했습 니다. 우리는 '칭의'는 그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뜻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되었음'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칭의'된 사람, 곧 죄용서 (무죄 선언)를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사..

하나님의 임재에 가치를 두다!

하나님의 임재에 가치를 두다! 나의 책 [하나님의 임재]에서 논의한 원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찰스 피니이다. 의역하자면 그는 성령님의 만지심을 받고 삶 가운데 성령님이 거하실 처소를 내어드린 후, 가는 곳마다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예수님과 대면한 바로 그 날, 찰스 피니와 대화한 모든 사람들이 곧 회심 하였다. 찰스 피니 위에 임하신 성령님 때문에 그를 만나는 모든 이들이 자연스레 주님께 순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임재를 지속시키는 법을 배우면서 피니는 더 큰 성령의 세례를 구하게 되었다. 내가 교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공장 일화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이 믿지 않던 공장주의 마음에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깊은 죄의 자..

고난이여 올테면 오너라!

고난이여 올테면 오너라! 1940년 9월 25일 수요일,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바야흐로 가을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들판에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벼 이삭들이 마냥 풍요로워 보이기만 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들판을 건너온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고운 옷 갈아 입은 잠자리들은 높디높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애양원 지붕 위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날이다. 우리 가족이 수난의 길로 접어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에 비하면 애양원은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 되어있었다. 신사 참배 강요도 심하지 않았고 유형무형의 간섭도 덜한 편이었다. 나환자 수용소라는 특성 때문에 어지간한 말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