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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믿음의 참된 의미

놀라운 주의 사랑 2017. 2. 4. 01:31



은혜와 믿음의 참된 의미



은혜는 죄를 덮어 주지만 그것은 단순히 숨겨 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한다. 즉 은혜는 우리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능력을 준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모든 것을 덮어 주는 푹신한 이불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합당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그것이 순종하는 삶의 배후에 있는 능력의 본질이다. 또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히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업적과 자선 행위,

또한 선한 삶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고, 영원히 불못에 던져

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부족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은혜를 통한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은혜는 결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롬 4:4).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구속할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은혜의 능력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

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7-18).


야고보는 바울의 말에 반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라고 말함으로써 바울의 

메세지를 더 명확히 해주었다. 이 은혜는 경건한 순종에 대한 '갈망'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까지 준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진실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말한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4).


야고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1절). 아브라함은 행동으로 믿음을

입증해 보였다. 그의 믿음이 온전해졌다는 것을 행위가 입증해 준 것이다.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

는 말씀이 이루어졌고"(23절).


우리말에서 '믿는다'는 말은 어떤 것의 존재를 마음으로 인정하는 뜻으로

축소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동요되어 '죄인의 기도'를 

드렸다가 본래의 불순종의 길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은 계속 자신을 위해

살며,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감정적인 구원만 믿고 의지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19절).


마음의 변화가 없고, 따라서 행동의 변화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은 '믿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그것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그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는 히브리서 5장 9절 

말씀을 잘 설명해준다. 믿는 것은 곧 순종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이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증거는 그의 부합하는 순종이었다. 그는 자신의 

귀한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받쳤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자기 아들조차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을

받은 것이다(롬 4:16).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은 믿음과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속임을 당해 

왔는가?




- 존 비비어의 [ 경 외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