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케네스 해긴 글

증여를 받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10. 26. 22:00




증여를 받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빌립보서 2:9-11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모든 이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케년은 이렇게 썼습니다.




추론하건대, 다른 곳에는 알려지지 않고 하늘에서 알려진

이름이 하나 있었는데, 이 이름은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

에게 주시려고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속에서

알려지기로는 영원한 아들이시고, 우리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이 이름을 받으셨는데, 이 이름 앞에 3세계 즉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인 지옥에서 모든 무릎이 꿇어야 하고,

모든 혀는 그가 3세계의 주(Lord)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7).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이 뭔가를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뭔가를 이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의

눈이 그들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들에

밝히 열려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다음은 성령의 영감과 기름부음이 된 바울의 기도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

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관련해서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교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모든 곳의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의 눈이 어떤 것들에 대하여 밝히 열려지기

위한 기도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영, 즉 우리의 마음과

내면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성은

그것을 깨달을 만큼 위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것들을 알고, 어떤 것들을 보고, 우리의

마음에서 어떤 것들에 밝히 열려져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 기도를

모팟(Moffatt)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17-23(모팟 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가 우리를 부르시는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의 영광스런 기업의 부요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깨닫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역사하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천사 

통치자들과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들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교회를 위해 그를

만물 위에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우주를 

완전히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나님은 3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절하며 그의 주 되심을

고백해야 하는 이름을 예수님께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를 우주에서 가장 높은 곳, 그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그를 만물 위에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말입니까?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22절)! 


케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이런 투자를 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공탁을 해 놓으시고 교회가 자신의 모든 

필요를 위해 인출할 권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신성의 충만함과 영원불변한 것의

부요함과 아버지의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들어 있는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에게 그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간구시에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찬양과 경배에서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습니다(8).






그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지옥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

모든 권세, 모든 능력, 그가 성취하신 모든 것이 그의 이름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그 때에 역사했던 것처럼

지금도 똑같은 역사를 일으킵니다.



1952년 8월 마지막 주간에 나는 택사스 주 동부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내 침대에 누워 성경과 다른 책을 가지고

뭔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밤 예배를 위해서

꼭 말씀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지만, 단지 내 자신의 영적인

유익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고 있던 성경 말씀은 빌립보서 2장 9-10절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과, 그 예수의 이름 앞에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이 어떻게 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뭔가가 나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나의 영에서

스쳐지나갔습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예수의 이름과 

그 이름의 권세와 그 이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특히

"땅에 있는"이라는 문구에 대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바로 여기 이 땅

위에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 이름은 하늘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이 땅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것은 땅 아래에서도 역사할 것입니다.

그 이름은 3세계 모두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3세계입니다.


그날 오후에 내 영 안에서 비록 잠깐이지만 그런 계시를 깨닫고

내가 벌떡 일어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이름이 역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나의 형님

덥(Dub)의 삶에 역사하는 마귀의 능력을 꺽어 버리노라. 나는

그의 해방을 주장하노라. 나는 그의 구원을 주장하노라."


나에게는 그것이 해결되었습니다. 10일 이내에 그가 거듭났습니다.

내가 15년동안 그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반복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벌떡 일어나자마자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계시적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계시적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섭취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따라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말씀을 먹고, 계속적으로 말씀을 연구

한다면 조만간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가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영에,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순간적인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던지거나 포기해 버린다면 당신에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진리들이 우리의 영에 의식에 새겨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교회 일반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저 다른 어떤 이름을 사용하는

것처럼합니다.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이름의 사용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케내스 해긴 목사님의 [예수의 놀라운 이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