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3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5) 저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무한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0. 29. 19:01

 

 

 

 

(5) 저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무한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용서를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역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에 고통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렘 36:1-3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

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돌이키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악과 죄를 사할 준비를 다 하셨

습니다. 왜냐하면 용서해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원치 않으십

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공의롭기 때문에 무조

건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을 용서해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할 가능성이 있을 때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 잘 나타납니다.

그 비유를 읽어 보면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 여러 날 전부터 마을 어귀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여전히 창기들과 놀아나고 

있을 때, 여전히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있을 때, 여전히 악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그때 마을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가 회개

하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그 때 하나님께서 이 죄를 용서할까 말까 이러고 계시

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백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용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백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그것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제가 믿기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잘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가

여러 번 반복된 죄일 경우 죄를 고백하면서도 죄 용서를 믿기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혐오하고 싫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롤랜드 벅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서 '주님, 저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 싫습니다. 주님께 스무 번이나 용서를 받았지만 또 넘어졌습

니다. 한 번만 더 용서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내가 너를 용서

했다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단다. 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나는 기억하

지 못한단다. 이번이 처음이구나! 기꺼이 용서해주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 [사랑 : 인생 승리의 길]에 보면 이와 유사한 놀라운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큰 도시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회 중 어떤 사람에게 손을 얹고 몇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집회를 하고 있는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는 거의 모두 이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

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병중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해긴 목사님에게 그와 

이야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다음 날 저녁에 일찍 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해긴 목사님은 면도를 하면서 교회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

니다. 그때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너에게 하게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공정하기 않기 때문에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공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 후 면도를 다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너에게 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하느냐?"

 

해긴 목사님은 준비를 다 하고 교회로 운전을 해서 갔습니다. 차에서 주님은

또 다시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다음 성경

구절을 주셨습니다.

 

 

마 18:21-22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눅 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전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흔 번에 일곱 번씩 용서하라고 하실 때 이것은 일생동안

에 걸쳐 그만큼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그만큼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이 성경 구절을 주시고 말씀했을 때 해긴 목사님은 왜 주님이 이런 말을

하시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하루에 490번의 죄를 지었더라도 형제를 용서하기 원하면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공정한 것이다."

 

 

해긴 목사님은 아직도 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그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왜 주님께서 그런 말들을 계속해서 하셨

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나는 심장에 문제가 있고 나의 신장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내가 사업을

정리하고 집에서 누워 쉬며 약을 먹으면 한 2년 더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이 일을 계속하면 나는 언제 쓰러져 죽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나는 순복음교회에 35년이나 다녔습니다. 해긴 목사님, 나는 목사님께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목사님이 믿음을 가르치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내가 치유를

받으려고 앞으로 나갈 때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치유하시지 않을 것을 압니다."

 

 

"왜 하나님이 당신을 치유하지 않으실까요?"

 

 

"나는 여러번 잘못을 하고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해긴 목사님은 그가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만한 큰 죄를 짓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여러가지 대화를 나눈 후에 해긴 목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것을 이제 멈추

십시오.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루에 490번씩 잘못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상당히 용서받기 쉬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은 자신을 용서했고 그의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즉각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 간증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용서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무 여러 번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이상 너를 용서하지 않을거야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습관적인 죄를 타당화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같은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지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죄를 하루에

일흔 번에 일곱 번이나 짓는다면 주님은 그에게 회개하고 그 죄를 끊어버리라고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거듭났어도 미성숙하기 때문에 그리고

습관적인 죄는 아니지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짓는 수많은 죄들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주님은 그런 죄가 일흔 번에 일곱 번이 된다 해도 우리가 자백하면 기꺼이

용서하십니다. 

 

 

그건 그렇고, 요즘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깊이 와닿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애 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

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문자는 알고 계셨겠지만 정말로 그 의미에 주의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매일 아침마다 새로워집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입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은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향해 실제로 이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금 아침 이슬 맞은 풀잎처럼 싱싱한 자비와 긍휼로 각 사람을 대하십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몸은 쉽게 지칩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침에 몸이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또 하루를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치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용서에 있어서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날 우리를 일흔 번에

일곱 번이나 용서하셨다고 용서하시는데 염증이 나거나 지치시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아침이 되면 몸의 기력이 회복되는 것처럼 아침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에는 한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렇게 좋은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한없는 사랑과 용서를 믿고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죄를

자백하고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