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믿음 ♡ 글

되돌아섬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2. 31. 01:37



되돌아섬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한 첫 마디가 "너희가 회개하라"였습니다. 이것은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였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였으니"(마태복음 3:1-2).


얼마 후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 교회가 태어나던

오순절날 베드로가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으로 한 말이

바로 이 "회개하라"였습니다. 


후에 바울은 아덴에서 설교할 때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17:30)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 이로 보건대, 회개하는 것을 피한다든지 회개하라는 명령을 적당히

타협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시도는 무엇

이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영적인 삶이 활기가 없는 사람들을 상담해 줄 때 회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진 어느 집회 후에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 2년이 되었고, 생동감 있는 신앙생활을

갈망해 왔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가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인 것 같은데 자기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려고도 했지만 별로 얻는 게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마치 천장에 부딪

쳤다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혹시 자신이 "선택" 받지 못한 것은

아닌지, 또는 내가 과연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의심하고 있듯이 그녀가 정말로 "선택" 받지 못했다면, 모든 게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는 그것이 결코

하나님 쪽의 문제는 아니며 언제나 우리 쪽의 문제임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18세 때 집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 때

까지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고, 자신이 받은 가정 교육과 교회 교육에 대해 매우 원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 온 그녀는 어떤 단체에 가입하여 거기서 2년 동안 몸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웠으며, 최초로 삶에서 자유를 느꼈습니다. 아무도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즐거움은 점차 시들어가고, 그녀는 자기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그런 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왜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등 자기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남아 있는 식구들은 진정으로 뭔가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그 당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 자신만큼이나 천박하게 보였습니다.

"병원의 병상에 누워서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결국은 올바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퇴원을 하면 부모님

께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영적인 삶은 결코 생동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런즉 누구

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고린도후서 5:17 말씀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관한 한 이전 것이 지나간 것이 별로 많지 않았으며, 새 것이 된 것도 별로 많이 

생각해 낼 수 없었고, 결국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또 그녀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어,

나는 그녀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동기가 애초에 집을 떠난 

동기와 같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만족과 자유와 행복을 원했는데, 

이 모든 것은 그녀 자신, 곧 그녀의 욕망이 중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스도를 제 마음에 모셔들이는 기도를 했고,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원했습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원하는

동기는 옳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종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결단도 없이 단지

영접 기도를 했다고 해서 그녀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지 못하게 막는 장벽이 되고 있는 

것들을 먼저 다루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그 장벽이란 우리의 죄요,

자기 만족이요, 독립적인 기질이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그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글쎄요, 전 그것이 저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아요. 전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대화는 1시간 이상 계속되었고, 나는 그녀의 문제를 알 것 같았

습니다. "자매님은 간절할 것입니다"라고 나는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은 무엇을 간절히 원합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자기

만족입니까? 자매님은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켜 드리는 데 관심이 있다는

증거가 엿보이지 않습니다. 또 자매님은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기쁘게

해주시길 원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에는 그만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매님의 문제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께 대해 독립적인 것과 자신의 죄에 대해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전 회개했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쪽은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그녀는 주장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해 의심하고나 부인하는 사람들

에게는 동정심을 갖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흠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녀와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문제는 보다 

더 분명해졌고, 구체적인 증거들을 통해 나는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매님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를 할 때까지는

하나님과 생동감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은혜롭고 온유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말에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계속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다면 전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하고는 재빨리 문쪽으로 걸어가더니 인사도 않고 그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그 건물 내에서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 그리고 어떻게 그녀가 화를 내고 떠나갔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나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이전에

그녀를 몇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며 상담을 하였지만, 그녀를

도울 수 없었던 터였습니다.


다음날 저녁 내가 설교를 하기 위해 단에 섰을 때 뒤쪽에 그 자매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녀는 다시 나와 대화하기 위해

왔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할 말은 전날에 다 했다고 생각되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약 30분 가량 지났을 때 그 두 사람이 내게로 왔습니다.


그 자매는 죽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저는 회개했습니다"

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전날 저녁에 내게 극도의 분노를 느끼며 집으로

갔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자기의 실상이 

드러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자매는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만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차로 출근하는데 철로 위를 기차가 달릴 때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덜커덩 소리가 마치 "자매는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루 종일 번민 가운데 있다가 드디어 저녁에 그녀는 주님께,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겠으며 주님께서 그녀의 속에서 주님의 목적을 위해

주님 자신의 삶을 사실 수 있는 자유를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비로소 그녀가 그토록 열망했던 만족, 목적, 의미를 찾게 된 것입니다.

"잃으면 찾으리라!"


그 후에도 나는 몇 차례 그녀를 본 적이 있고, 그녀는 종종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녀는 어느 미션 스쿨에서 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결코 이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

시키거나 값을 치르지는 않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입니다.





- 찰스 프라이스의 [진정한 그리스도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