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마헤쉬 챠브다 글

마지막 폭풍의 전사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2. 31. 17:56



마지막 폭풍의 전사


가장 위대한 폭풍의 전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싸움을 싸우셨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난 이 싸움은 자연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모든 영계의 존재

들도 이 싸움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 계실 동안 십자가는 가장 큰 거절, 가장 큰 치욕,

가장 심한 고통의 상징이었다. 죄와 사망을 상대로 벌이셨던 이 싸움에서

하나님의 비밀 계획은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지리라"라는

진리 안에 감춰져 있었다. 어둠의 왕국은 교만과 자기 사랑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빛의 왕국은 세상 왕국의 법칙에 격렬한 반대를

표한다. 빛의 왕국은 겸손과 자기 희생을 통해 확장되기 때문이다. 궁극적

폭풍의 전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해 '겸손'과 '자기희생'이라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셨다. 죽음으로 심어진 씨앗은 곧 

생명을 열매 맺게 된다. 이 법칙은 인간의 지혜를 훨씬 능가하는 진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하니하면 할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

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

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3-26)



이 짧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어떠한 세계관을

갖고 계셨는지 알 수 있다. 육신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거절하려

했다. 이 점에서는 어느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영광을 받으실 때는 언제인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 온 인류

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을 때이다. 모든 사람이 이 교훈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응답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에 어둠의 왕국은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어둠에 

갇혔던 포로들은 영원한 저주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십자가 형틀 가로 빔(beam)은 죄의 무게를 짊어진 구세주의 활짝 편

두 팔을 지탱하셨다. 그 가로 빔은 이 땅과 천국을 연결하는 세로 기둥

에 올려졌다. 십자가에 달린 자신의 육체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쏟아 승리를 쟁취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구세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십자가에서의 대속이 죄와 사망과 사탄

에 대한 최종적 승리하는 사실을 깨달아 알았다.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을 위한 대속을 넘어서, 삶의 변화를 위한 대속을 넘어서, 승리로

서의 대속이야말로 초대교회성도들이 견지하였던 대속의 개념이다.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는가? 자신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한 예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당하는 종'

의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사 53장).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12절). 평범한 죄인으로 여겨진다는 뜻

이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5절). 그러나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11절).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

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므로...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이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12절).


다윗이 지은 시 한 편 속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2).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 세상의 어떠한 명성도 그리스도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가 

없다. 대신에 온 세상을 자신에게로 이끌기 위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상징을 재현하기를 추구하셨을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은 아주 오래전, 단 몇 푼을 얻기 위해 '샌드

위치 광고판'을 목에 걸고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광고 메세지를

전달했던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광고 메세지가 적혀 

있는 커다란 판자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메세지, 그 속에는 삶이 있었다. -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

이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죽으셨다.

"이를 위하여 내가 이 땅에 왔노라."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

셨다. "나는 많은 사람을 대속하기 위한 몸값으로 지불되어야 하리라."

심지어 태어나실 때조차도 십자가의 그림자가 그의 앞에 드리워졌었다.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시몬과 안나 선지자는 예수님이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대해 예언했다. 하지만 그토록 영화로운 찬양을 올려

드리던 중,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의 나날

들에 대해 일러두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5).

예수님의 죽음은 그가 완수해야 할 사명의 핵심이었다. 신비중의 신비

는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절망을 잠재우고,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특이한 방법이었다. 승리자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정복

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공의를 가지고 봐좌에 좌정하시기 위해 

죽이고 멸망시키는 대신,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죽임을

당하셨다. 이것이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부활하신 이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된 사람들은 죽음을 가리켜 '잠시 잠드는 것' 정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죽음은 그저 주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고후 5:8).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광, 곧 순종 가운데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무거운 영광의 무게와 비교될 수조차 없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승리의 열쇠이며 환난과 핍박 앞에

서도 전진할 수 있었던 영적 행군 나팔 소리였다.


이 어둠의 때에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따르고, 궁극적 폭풍의 전사이신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영광을 얻기 위하여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의지로만 가능하다. 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훌륭

한 십자가 군병이 되는 과정 중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 없어질 육체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헛된 원칙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




친히 나무에 달리신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이작 와츠(Isaac

Watts)의 아름다운 찬송을 떠올리게 된다.



When I survey the wondrous cross

놀라운 십자가를 내가 바라보니 (주 달려 죽은 십자가)


In which the Prince of Glory died

거기서 영광의 왕이 죽으셨도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My richest gain I count but loss

나의 가장 부요한 재산마저 헛된 것으로 여기니 (세상에 속한 욕심을)


And pour contempt on all my pride

내 교만한 마음에 치욕을 안기리라 (헛된 줄 알고 버리네)




Forbid it, Lord, that I should boast

내가 자랑하는 것을 금하소서, 주여! (죽으신 구주밖에는)


Save in the death of Christ, my Lord;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구원하소서 내 주여! (자랑을 말게 하소서)


All the vain things that charm me most,

나를 현혹하는 헛된 모든 것들을 (보혈의 공로 입어서)


I sacrifice them to His blood.

예수의 보혈 앞에 다 바치네 (교만한 맘을 버리네)




See, from His head, His hands, His feet,

그의 머리, 그의 손, 그의 발을 보오니 (못 박힌 손발 보니)


Sorrow and love flow mingled down

슬픔과 사랑이 뒤섞여 흐르도다 (큰 자비 나타내셨네)


Did e'er such love and sorrow meet,

이러한 사랑과 슬픔을 만났던 적이 있던가? (가시로 만든 면류관)


Or thorns compose so rich a crowd?

면류관에 가득한 가시들을 본 적이 있던가? (우리를 위해 쓰셨네)




Were the whole realm of nature mine,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라 하여도 (온 세상 만물 가져도)


That were a present far too small

주님께 드리기엔 너무도 작은 선물이겠네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Love so amazing, so divine

너무도 놀라운 사랑, 너무도 거룩한 사랑 (놀라운 사랑 받은 나)


Demands my soul, my life, my all.

그 사랑이 내 영혼, 내 삶, 내 전부를 원하시네 (몸으로 제물 삼겠네)




                  


- 마헤쉬 챠브다 목사님의 [폭풍의 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