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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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하는 이유들

놀라운 주의 사랑 2019. 1. 8. 01:31



제 2부 

모든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하는 이유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사도 바울은 방언 기도에 관하여 많이 썼을 뿐 아니라 방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가 설교한 내용대로 살았음이 명백한 것은 그는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18)라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늘 규칙적으로 방언을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믿는

자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 매일 사는 삶 속에서 능력의 원천이 되며

축복인 것을 알기 원합니다. 


제 2부를 쓴 목적은 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성령님의 능력으로 공급되어지는

모든 축복을 알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 - 방언은 첫 번째 표적(the Initial Sign)입니다.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우리가 방언을 말한다고 가르칩니다. 방언은 성령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증거요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을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방언이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계시는 첫 번째 초자연적 증거이

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우리는 유대 사람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부어짐을 보고 놀란 것을 읽을 수 있습

니다. 


어떻게 유대인들은 고넬료의 가족이 성령을 받았는지 알았을까요?

그들은 그 축복이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6). 방언은

이방인들도 같은 선물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초자연적 표적이었

습니다.



두 번째 이유 - 방언은 영적으로 우리를 세워줍니다

(Spiritual Edification).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교회로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믿는 자들이 영적으로 강건해지며

든든히 세워지기 위해 방언을 예배에서나 개인의 기도 생활에서 계속하라

고 권면합니다. 그리스어 학자들은 "강건하게 세운다(edify)" 보다 더 

원어에 가까운 단어가 현대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 단어는 "영적으로 충전하다(charge)"입니다. 마치 베터리(battery)를

충전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를 강건케 하며(edify), 충전하며(charge), 자기 자신을 세우며

(build up)"라고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 초자연적인 영적 충전(spiritual edification)의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 누구나를 위한 것입니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모팻 번역에 이 구절은 "그는 신령한 비밀(divine secrets)을 말한다"고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그분과 대화하는 신령하고 초자연적

인 수단입니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내 영이 기도한다"는 말을 주의해 보십시오. 확대 번역 성경은 

"내 영(내 안에 있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이 기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은 직접적

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접촉합니다. 우리는 신령하고 초자연적인 수단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나?"라고 사람들이 묻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방언이 유익하다고 했으면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건케 한다고 했으면 강건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과 초자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으면 하나님과 초자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모든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한다고 했으면

모든 믿는 자는 방언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사람만 방언을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은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표적 중에 하나가 "그들이... 새 방언으로 말하며..."

(막 16:17)입니다. 



세 번째 이유 - 방언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요 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영국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 총회장을 했고, 오순절 성령

학교를 온 세계에 세웠던 하워드 카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첫 번째 증거라고 했으며, 그 사람이 방언을 처음 한 이후 일생 동안 계속

적으로 방언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방언 기도는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 줄기와 같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적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늘 의식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만일 내가 성령님이 매일 내 안에 살고

계심을 의식할 수 있다면, 매일 살아가는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12살 된 딸이 너무 화가 나서 엄마에게 버릇없고 증오가 

섞인 말을 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고 있던 순회 전도자(visiter evangelist)

가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 전도자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하여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목사님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시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그녀는 울었습니다. 


"얘야, 네가 하는 것을 보고 들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 있단다. 너 그리스도

인이지?"


"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적 있니?"


"네."


"그렇다면, 네 안에는 성령님이 계셔. 그분이 네가 말한 것과 행동하는

것을 아신단다. 그러나 네가 회개하면 주님께서 너를 용서해주실 거야."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그녀는 주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녀는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마쳤을 때, 그 전도자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네 울화를 참을 수 있는 비결이 한 가지 있는데, 네가 매일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란다. 그러면 너는 성령께서 네 안에 계심을

의식하게 될꺼야. 네가 성령님이 네 안에 계심을 기억하면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


몇년 후에 전도자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소녀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았어요.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매일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했는데 전처럼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불행히도 우리 모두는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람들도 몹시 화를 내며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할 바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의식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쉽게 초조해지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언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시는 그분의 임재를 늘 의식하게 됩니다. 



네 번째 이유 - 방언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

(God's Perfect Will)을 따라 기도하게 해줍니다.


롬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방언 기도는 우리 기도 가운데 이기적인 것들을 제거해줍니다. 만일 내가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기도가 아닐 것이고

이기적인 기도가 될 것입니다. 나이 많은 농부가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시고, 아내와 아들 존과 그의 아내 이렇게 우리 네 식구만 축복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듯이 우리 기도도 종종 이런식이 되기 쉽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지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른

기도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기도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 내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P. C. 넬슨은 그리스도어 문자 그대로 "성령께서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신다"라고 말합니다(정확히 말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그는 이 그리스어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입술을 통해 신음이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14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라고 말했고, 확대 번역 성경은 "내 영(내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 기도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도를 받아) 당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을 인도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시고 당신은 당신의 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말하고, 그분은 발음을 인도해주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령님

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바대로 기도하게 도와줍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당신과 분리되어서 무엇인가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당신과 분리되어서 탄식하며 방언을 말하진 않습니다. 그 탄식은

당신의 내부로부터 당신의 입술을 통해 빠져나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돕는

자로, 또 중보자로 보내지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기도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와 계십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인도되어진 기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 속에서

이기적인 것들을 줄여줍니다.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그들 마음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온전한 뜻도

아니고, 그들을 위해 최고의 좋은 것도 아닌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들을 얻기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것이 아니고, 온전한 뜻이 아닌 어떤 것들을 원한다면 하나님은

종종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시기를 원치

않으셨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왕을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왕을 허락

하셨습니다(삼상 8:5-22; 10:19).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최고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째 이유 - 방언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자극합니다.


요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방언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자극하고 하나님께 좀 더 온전하게 의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돕습니다.


만일 성령님이 초자연적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지도해주신다면 믿음은

방언을 말함으로 훈련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다음에 무슨 

단어를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 분야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와줍니다.


젊은 침례교 목사로서 내가 담임하던 시골 교회에서 나는 한 감리교인

부부 집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위궤양이 있었고 의사는 그것이 

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겁주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돈을 잘 벌었

지만 대부분의 수입을 병원비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종종 그들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녀가 성령 세례를 받은 집회 며칠 뒤 나는 그들의

방문했고, 그녀가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전에 그녀의 위장은 아기 이유식이나 우유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습

니다. 그녀는 "저는 성령 세례와 방언 뿐만 아니라 병고침도 받았어요.

저는 이제 아주 건강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우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성령 세례 받는 것이 병고침을 받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어쨌든 방언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가를 배우도록 도와

줍니다. 방언 기도는 믿음을 자극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방언기도의 능력을 풀어 놓으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