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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을 특별히 강조했던 바울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 30. 23:30




방언을 특별히 강조했던 바울

(PAUL GAVE PROMINENCE

TO SPEAKING IN TONGUES)


오늘날 교회에는 방언의 가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

인들은 방언이 성령세례의 최초의 증거인 것은 알지만, 다른 많은 구절에서

방언을 다루는 논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롭게 하고 축복하기 위해 이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신 많은 이유들을 상세하게 논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에 부여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바울 서신을 연구해보면, 당신은 그가 방언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는

것과 그가 자신이 전한 대로 분명히 실행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결국 그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한번은 어떤 유명한 그리스도교 지도자가, 성령충만을 받은 자신의 회심자

중에 한 유명한 사람에게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그 편지의 발췌된 일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그리스도교 지도자는 편지에서,

바울은 방언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관점을 취했고, 고린도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을 말리고 금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확한 성경의 장과

절을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단지 바울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했다고 주장

하면서 자기 입장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취했는가?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리스도교 지도자는 문맥과

상관없이 일부만 취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용했습니다. 


바울이 정말로 한 말을 봅시다. 첫째로, 그는 우리가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말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당신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상에서 이렇게 선포했다고 해봅시다.

"이 날은 주가 지으신 날입니다. 좋은 날을 주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당신은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지도자에 따르면

당신은 그 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성경학자는 바울이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취했다고 말함으로써 같은 종류의 논리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고린도 교회 전체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 사람의 무리보다 더 방언을 말했다면, 그는 분명히

엄청난 양의 방언을 했을 것입니다. 14장의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 모든

고린도 사람들이 방언하기 원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 중 다수가 예배 중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방언을

했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아래와 같이 교정해야 했습니다.


고전 14:22-23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바울은 23절에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면, 분명히 고린도

신자들이 교회에서 모두 함께 방언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만약 계속 그렇게 하는데 영적인 것들을 배우지 못한 누군가가 교회에 온다면,

그 사람은 신자들을 보고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만두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신들은 잘못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아닙니다! 그들은 옳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초자연적인 은사에 너무 흥분하고 열정이 넘친 나머지 모두가 동시에

방언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바울은 다만 이들에게 교회 예배 중에는 모든 것이 듣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후에 이 장에서 그는 공중 모임에서

방언하는 것에 대해 더 자세한 지침을 줍니다. 


고전 14:27-28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는 자는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고, 예배 중에

말해지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으며, 조용히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 방언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첫째로, 그는 선포된 말씀에 의해 세워질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

조용히 방언을 말하는 것에 의해 세워질 것입니다.




목적과 사용에 따른 차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4:19에서 "그러나 교회에선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 의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아무리 엄청나게 많이 방언을 한다 하더라도 그가

모든 고린도 신자들보다 더 많이 방언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렸

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에서는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말을 통해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방언의 목적이 가르침이나 설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방언은 첫째로 믿는 자가 자기 개인의 영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개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이는 바울이 교회에서가 아니라, 주로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 생활에서

방언을 말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아침에 방언을 하면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식사 시간 외에는 계속 방언을 하고 밤에도 방언을

하면서 잠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위 구절은 바울이 방언을 가치 있게 여겼음을 뜻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치를 두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또는 자기가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이 첫째로 개인 기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에

사용하도록 주어진 은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방언을 하면서

바로 통역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영적인 은사는 교회의 유익(과 동시에 개인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며, 함께 사용하면 예언의 은사와 똑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모든 방언은 성령께서

주신 말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과 사용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신자들이 교회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면, 모두 동시에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모두 큰 소리로 방언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한 시간 동안 통역도 없이 방언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도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설교자

자신은 세워지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의 가치를 배우기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신자들은

절대 방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면서 과장하여 말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바람과 열망은 모든 신자가 방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4:5). 그는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방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초자연적인 은사의 모든

범위와 가치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오직 방언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매일의 삶을 위한

축복과 능력의 근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주제에 대해

알았던 것을 더 깊이 탐구해 봅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방언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방언을 해야만 

하는지 더 알면 알수록, 우리의 고백은 점점 바울과 일치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렇게 선언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방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방 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