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27. 18:41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그 믿음의 중요성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자명해집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그럼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버튼은 이에 대해 "믿음은 사랑을 낳고

그것을 통해 행실 속에서 작용한다."

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강령 즉 골자와 핵심입니다

(마 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면 대신계명인 1-4계명을

지킬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면 대인계명

5-10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만들고

그 결과 계명들을 지키게 만듭니다. 이것이

곧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다음 세 가지 성구를 서로 비교해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방금 해드린 설명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라디아서 5:6)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라디아서 6:15)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린도전서 7:19)



이로 보건대 결국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있는 산 믿음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라고 했습니다(10절).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8절).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육체의 현저한 일'

즉 죄의 반대가 단지 거룩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종교적인

거룩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죄인들의 친구였던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단지 거룩할 뿐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9-10)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5:3)



따라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해야 죄를 이길 수 있고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스미스 위글스워스는 이해하기 쉽게

평범한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한 젊은 남자와 한 젊은 여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들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짧은 기간 안에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애정과

강렬한 사랑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이란 무엇을까요? 그것은 믿음의 

마음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친족과 같은 사이

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있는 한, 그들은

진실합니다. 한 사람은 북부로 가고, 한 사람은

남부로 가더라도, 그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은 서로에게 진실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짙은 사랑이 마음

속에 있을 때에도 이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사랑이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가장 감동적으로 보여준 이야기는 썬다 싱이

설교 중 소개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명의 젊은이가 도박을 했습니다. 도박을 하면

오백 루피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 그 나라의

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도박을 하다가 

관리들에게 적발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중 한 명은 부유한 사람의 아들이

었고, 한 명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습니다.


부유한 집 아들은 즉시 오백 루피의 벌금을 

내고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아들은

벌금을 내지 못하여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벌금을 벌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했습니다. 돌에 손이 찍히기도

하고 베이기도 하여 피가 흘렀습니다. 


감옥 창문을 통하여 면회 온 어머니의 손을 본

그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어머니, 손에 난 그 상처들은 무엇인가요?

손가락에 흐르는 그 피는 또 무엇인가요?"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나는 너를 구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단다."


마침내 어머니는 오백 루피를 마련하여 아들을

감옥에서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부자 젊은이가 그 아들을 불러

주사위 놀이를 하자고 꾀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두 번 다신 그 일을 하지 않겠네.

자네는 쉽게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나는 

어머니의 노동과 땀, 그리고 어머니의 상처와

피로 말미암아 풀려났다네. 어머니에게 

그러한 고통을 안겨준 이런 도박을 앞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겠네."


이 일화를 소개한 후 썬다 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 젊은이와 같은 사람들은 죄로부터

구원이... 그저 쉽게 얻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린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고통을 안겨주는

그러한 범죄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이 청년의 어머니와

비교할 수 없는 심한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등은 채찍에 길게 파이고, 

이마는 가시관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렸으며, 

손과 발에는 커다란 대못이 박혔습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창 자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 때문에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계속 육체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는다면 얼마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까?

얼마나 이기적인 것입니까?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배은망덕

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결단하고 주님께 

철저히 복종하는 사람이 됩시다.



          

        



- 변승우 목사님의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