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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중계명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4. 1. 22:00




사랑의 이중계명



예수께서 이와 같이 열혈당식 혁명 신학에도 반대하고 바리새적 소극적 

경건주의에도 반대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들로

설명한 데는 하나님의 백성의 적극적인 제자도, 즉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을 전제합니다. 적극적인 제자도는 소극적 경건주의(또는

경건주의적 소극주의)의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받는 것을 단지 음식 가리고(예 ; 주초 삼가),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고(聖別), 십일조 등 외형적인 몇 가지의 계율들을 지키는 것

으로 국한하는 것으로는 예수가 가져온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통치) 구체적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의 요구로 온다

고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모든 계명들을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28-34 병행 구절들).


십계명의 첫 네 계명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구체화한 것들

이요, 이어지는 여섯 계명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구체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리새인식으로 율법주의의 장난에 빠져 율법을 지킨

다면서도 율법의 정신은 저버리는 것에 반해, "하나님을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로 오는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순종한다면, 바로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

의 샬롬은 이 땅에 현재(첫 열매의 형식으로나마)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를 추상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의 실존

에서 "하나님을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로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것인지 사단의 통치를 받을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것인지 사단의 뜻을 좇을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요구받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더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

하십니다. 반면 사단은 "네가 네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되라"고, 곧 

"네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으로 너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라"고 유혹

하고, 그러기 위해 결국 이웃을 착취하기를 종용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반대말은 우상숭배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엄중히

경고한 우상숭배의 형태는 맘몬 숭배, 곧 재물로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을 가르기도 하고, 형제간을

원수지간으로 만들기도 하며, 사회의 온갖 불의와 갈등을 조장하고, 국가

간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모든 우상숭배는 파괴력을 가지고 죽음

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가장 크게 가져오는 우상숭배는 맘몬 숭배

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마 6:24; 눅 16:13).


맘몬이즘에 빠져있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도 했습니다(눅 18:24-25). 물론 예수가

부를 무조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자들도 하나님

나라로 영접하였으며, 몇몇 부자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가 경고한 것은

부가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의존하고, 그것을

더 벌기 위해 이웃을 착취하는 자세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돈을 많이 벌어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도록(곧 스스로

에게 하나님 노릇하도록) 유혹하고, 그러기 위해 이웃을 착취하도록 요구합

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중의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의 아빠 되심에 의지하여 그의 선한 뜻에 순종하며 또한 이웃을 사랑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마 6장).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존의 매 순간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장과 사단의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컴퓨터를 생산하는 사업주라고 생각해봅시다. 컴퓨터의

생산가가 100원이라고 합시다. 하나님은 나더러 그 생산가에 정당한 이익

(재투자를 통해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만큼의 이익) 100원을 덧붙여

200원 정도만 받고 팔아 내 고객들(나의 이웃들)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라고 하십니다(이웃 사랑). 그러나 사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내가 평안하고 행복해진다며 나더러 2000원을 받으라고 부추깁니다.

곧 맘몬 우상숭배에 빠져서 나의 고객들(이웃들)을 착취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시시때때로 바로 이런 사업가와 같은 갈림길에 놓입니다.


이런 때 우리가 사단의 뜻을 따르면(곧 사단의 통치를 받으면) 우리는

불의를 저지르게 되고 갈등을 야기시키며 고난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사단의 통치는 인간 사회를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 노릇하는, 소수의 사람만

생존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게 합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께 의존하고 이웃을 섬기는 자세로 살면,

부는 비교적 공정히 재분배되어 경제적 정의가 이루어지고, 경제적 정의는

사회적 평화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는 만인이 만인을 섬기게

하여 골고루 잘 사는,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있는 사회를 이루게 합니다.






- 김세윤 교수님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