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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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과 삶에 대한 확신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8. 26. 23:18




소명과 삶에 대한 확신


로마서 10장 13-15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설교자가 되는 길을 

말씀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 전파의 특권을 갖게 되는 유일한

길은 보내심을 받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친히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보내심

을 받는 것이다. 왜냐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있어서 그러한 부르심은 절대로 가족이나 친구

또는 교회로부터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분명하고 잘못 주어질 수 없는 계시적인 지식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간지대나 타협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의

위치에 있게 된다. 그 부르심은 우리 존재의 모든 영역에 미치게 된다.


내가 주님을 영접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다는

것이 내면에 와 닿았을 때, 나는 나의 내면에서 있었던 전율과 떨림을 기억

한다. 내 영에 주어진 놀라운 계시를 통해 나는 그분의 부르심을 내 세포

하나하나와 내 육체의 모든 조직들, 그리고 내 마음의 모든 영역을 통해 

들었다. 


그것은 숨 쉬는 것이나 몸을 위해 물을 위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만큼

이나 저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게 친히 "아들아, 네가 나의 

복음을 전하도록 내가 너를 부르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진정한 지각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비록 목회자가 아니라 해도 당신의 전문

분야에 있어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나의 경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언젠가 불가능한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들의 부르심이 개인적이지도, 분명하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몇몇 목회자들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자신들이 한 번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시는 개인적인 부름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그저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성경과 성경 시대의 역사,

성경 기사들이 전하는 사건들이 포함한 세상의 지식들을 배운다. 그리고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한다. 그러면 자신들이 일련의 교단에서 목회자나

선생으로의 삶에 적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분은 당신이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당신을 아셨고, 당신을 지으셨으며, 당신의 이름과 주소까지 아시는 분이

시다. 


내가 왜 이러한 것을 말하는지 아는가? 그 이유는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구원 

  계획 때문이다.

- 모든 형태의 사역에 대한 나의 세심한 관찰로부터 온 것이다.

- 내가 받은 심오한 부르심의 경험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와 세상의 심각한 문제를 본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부르심 없이 사역과 다른 전문 분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과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에 기초하지 않은 설교들이

마치 재앙처럼 사람들에게 퍼부어지고 있다. 점점 더 복음의 내용이 담겨지지

않은 설교와 가르침이 주어지고, 때로는 전혀 복음과 상관없는 것들이 전해

지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을 영적이기보다는 종교적으로 만든다.

만일 그 사람이 사역이 아닌 전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는 영적이지

않고 더욱더 세상적이게 된다.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측면은 모두 손을 맞

잡고 함께 가도록 계획된 것들이다.


반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방법이다(로마서 1장 16절을 보라).


궁극적으로 구원이란 단순한 종교적인 신앙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사도행전 26장 18절을 보라).

이러한 설교는 사람들로 넓은 길과 지옥으로 이끄는 길에서 멀어지게 하고,

대신 바른 길과 영생으로 이끄는 좁은 길로 인도하는 구원의 말씀을 전한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을 보라). 


첫 번째 설교 방법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기름부음이

없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전공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만일 설교자가 예수님께서 받으신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거나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간에 부르심을 받지 않았거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역이라고 부르시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한 젊은 목회자는 자신이 확실한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사역을 시작한 것은

자신이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삶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

이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먼저 성경을 들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 그분의 

대변자로 남자 혹은 여자를 뽑으셨던 모든 사건을 찾아보라. 그 모든 사람들

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사복음서로 가서 사도들이 어떻게 선택을 받았는지 확인해 보라.

예수께서 그들 각각을 부르시지 않았는가.


세 번째로는 사도행전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라. 열두 사도가 아니었지만 

후에 사도가 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라(후에 바울이 된 다소 사람 사울

처럼). 거기에는 바나바와 실라, 디모데, 디도, 아굴라와 브리스가, 또한

바울이 로마서 15장 언급한 여자들을 포함한다. 모든 장들을 읽고 또 읽으라.


나는 그 젊은 목회자에게 성경에 나와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예들을 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예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명백히 한 개인을 직접

적으로 부르시지 않고는 그를 통해 일을 하시기 위해 부탁하지도, 명령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나는 그에게 불가능을 행하게 하는 핵심인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는지

물어보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대해 내가 주는 조언은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께서 부르신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나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 혹은 목회자로서의 지위, 그 외에 어떤 영역에 있는 사람

에게든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그분을 당신에게 드러내 달라고 구하라. 그리고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임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을 전하며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고 당신이 부름을 받았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더

많이 걱정하신다. 말씀을 전하거나 그 외의 어떤 영역에서든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그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의 [씨를 심고 영으로 기도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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