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3

오직 기독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8. 9. 29. 03:06


오직 기독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인간 중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은 반복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잠언 14:12,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이것은 종교 선택에 가장 적합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은 하나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4-6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

고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

에게는 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렇다면 기독교가 진짜라는 것, 하나님이 진짜 계시고, 복음이

참 진리이고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고, 기독교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모든 종교가 저마다

자기네가 진짜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

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믿을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

제시해드리겠습니다.



1. 첫 번째 증거 : 예수님의 부활


하나님은 그냥 믿으라고 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확실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사도행전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토마스 아놀드는 부활을 "역사상 가장 잘 증명된 사실"이라고 했고,

아더 피어선은 "모든 역사의 사건들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오류 없는 증거들로써 풍부하게 확증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만 앤더슨은 [부활의 증거]라는 책에 잘 설명되어 있습

니다. 저는 전도사 시절에 쓴 [좋은씨와 맑은물]이라는 책에서

그것을 소개했는데,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부활에는 확실한 증인들이 있다!


증인이 있느냐 없느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부활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7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

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

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에 대한 기록인데, 더러 빠졌습

니다. 증인들의 리스트를 빠짐 없이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막달라 마리아(막 16:9, 요 20:11-18)

둘째, 여인들(마 28:9-10)

셋째, 글로바와 그의 동행자(눅 24:13-15)

넷째, 베드로(눅 24:34, 고전 15:5)

다섯째, 도마를 제외한 열 명의 제자(요 20:19-23)

여섯째,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요 20:24-29)

일곱째, 디베랴 바다의 일곱 제자(요 21:1-14)

여덟째, 주님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

아홉째, 감란산의 오백여명(행 1:4-11, 눅 24:50-51, 고전 15:6)


이처럼 예수님은 약 10차례에 걸쳐 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증인이 무려 500명이 넘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팩트 자체입니다.




(2) 부활에는 확실한 증언들이 있다!


증인이 있어도 증언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요. 그런데 부활의

증인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것을 또렷하게 증언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자들(막 16:9-11),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

와 또 한 제자(눅 24:33-35),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행 2:23-24,

32, 행 5:29-32), 복음서 저자들, 그리고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님과 만난 것을 이구동성으로 증언했습니다(고전 15:12-15).


참고로, 예수님의 부활에는 전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의당

그려내기 마련인 내용들, 즉 부활 자체에 대한 극적인 장면,

대적을 당황시키기 위해 짠~ 하고 그들에게 나타나시는 모습

같은 것이 없고, 최초의 목격자가 되는 영광도 베드로나 요한

이나 친모인 마리아에게 주지 않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었습

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기록이 매우 진실하고 사실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입니다. 




(3) 부활에는 확실한 논증들이 있다!



1) 사도들의 담대한 복음전파와 순교 

두려워서 문을 안으로 잠그고 있던 사도들이 어떻게 박해 중에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까요? 특히 계집 종 앞에서도 주님

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공회 전체로도 말문을 막을 수

없는 대장부가 되었을까요? 바울과 누가는 그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을 누가복음 24장 34절과 고린도전서 15장 5절에서 제공

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만약 부활이 베드로와 사도들의 조작이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리학이 가르쳐주듯이

양심을 괴롭히는 거짓말보다 인간을 더 소심하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들의 변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뿐입니다. 



2)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돌연한 변화

예수님께 네 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막 6:3), 그들은 예수님을

비꼬고 믿지 않았습니다(요 7:1-5). 그런데 놀랍게도 그랬던

야고보가 예수님을 "영광의 주"(약 2:1)라고 불렀습니다. 온갖

기적을 행하며 살아 있을 때도 믿지 않았던 그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은 후에 형을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린도

전서 15장 7절에 그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3)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부흥과 발전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무덤에서 몇 분만 걸으면 될 거리에 위치

해 있었고, 거기서 행해지는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이었

습니다. 게다가 유대 당국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초대 교회는 

3000명, 5000명, 수만 명으로 계속 성장했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이 도에 복종했습니다(행 2:41, 4:4, 6:7). 부활이 

사실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4)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강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마 3:11). 그러나 열 두 제자 중 누구에게도 성령 세례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세례

요한도 줄 수 없었던 성령 세례가 오순절 날 주어졌습니다. 


예수님 외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32에서 33절에서 증언한대로,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아서 부어준 것입니다. 



5) 기독교의 주일 제도

유대인들은 안식일(토요일)에 열광적으로 집착했고, 초대 교회는

거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임이 주일(일요일)로

변경된 대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 매우 놀라운 사건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그럴 만한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 외에는 없습니다. 



(4) 부활에는 확실한 물증들이 있다!


부활에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물증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세계 최강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더 결정적입니다(마 27:62-66).

지금은 그 위에 성전이 세워져 있고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 있었던 예수님의 수(壽衣)도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전언을 듣고 베드로가 무덤에 달려갔을 때,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고 시신을 쌌던 수의인 "세마포"

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있었습니다(요 20:6-7).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시체를 훔쳐가면서 시체를 싼 세마포를 벗겨서 들고가겠습

니까? 만일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거나 치웠다면 십자가형을

당한 끔찍한 시체를 보거나 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의째 가져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대제사장이 퍼트린 것처럼 제자

들이 몰래 시체를 훔쳐간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있더라."(요 20:7)고 했습니다. 마치 빈 누에고치

와도 같았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한 자들만 받게 되는 "신령한 몸"(고전

15:44)이어야 이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

님은 제자들이 문을 안으로 있던 실내에 문을 열지 않고 스르르

벽을 통과하여 들어오셨습니다(요 20:19, 20).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이 머리를 쌌던 수건을 통과하신 것입니. 존 스토트는

"수의가 헝크러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기자가 수의는 그대로

있었다고 한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 사실을 특별히 강조

한 사람은 요한인데, 그것은 그가 그 극적인 날 아침 베드로와 

함께 달려갔었기 때문이다...


그는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무덤에 이르렀으나 무덤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베드로가 도착한 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8절). 문제는 그로 하여금 보고 믿도록 한 것이 무엇인

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단순히 시체만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의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특이하게 헝클

어지지 않고 정리되어 있었다. 


이 사건의 줄거리를 재구성해 보자.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19:38-42).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간청

하였으며, 니고데모는 모략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 쯤 가지고

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 다시 말해서 그들

은 세마포(아마포) 띠로 예수님의 시체를 동여매면서 그 사이에

향료 가루를 뿌렸다. 물론 나사로의 경우와 같이(요 11:44) 

머리는 별개의 천으로 쌌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동양의 관습

대로 얼굴과 목만 드러나도록 두고 몸과 머리를 천으로 감아

쌌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동굴 무덤 한 쪽에 만들어 둔 돌판

위에 시체를 놓았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우리가 무덤 속에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어떤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예수님이 움직이시기 시작하시다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

다음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었다. 그리고 부활했다. 그는 부활했지 소생하지 않았

다. 우리는 그가 기적적으로 죽음을 통과하여 전혀 새로운

존재 세계로 들어갔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곳에 

있었을 경우 무엇을 보았을까? 갑자기 그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시체는 '증발하여' 새롭고 다르며

기이한 어떤 것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훗 날 닫힌 문을

통과했듯이 수의를 통과하여 나가고 수의는 거의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백 근이나 되는 향료가 스며 있는 수의는, 지탱해주던 시체가

빠져나가자 내려 앉거나 쭈그러져 납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몸을 쌌던 천과 머리를 감쌌던 천 사이에는 간격, 즉

얼굴과 목이 있었던 자리만큼의 간격이 있었을 것이다. 

머리를 감았던 천은 붕대 감듯 종횡으로 엇갈려 복잡하게

감았기 때문에 우묵한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머리가

없는 터반(turban)처럼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이 쓴 글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버려진 수의에 대한

세 가지 특징을 그 사랑받던 제자가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수의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둘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있었다'(7절). 뭉쳐져서 구석에 던져져 있지

않았다. 여전히 돌판 위에 있었다... 셋째, 이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있었다.'

이는 속이 빈 머리 수건이 여전히 그대로 둥근 형체로 유지

하고 있는 것을 적절하게 묘사한 것이다.


사도들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맞이했던 광경이 어떠

했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돌판, 놓인 수의와 속이 빈

머리 수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간견! 그들이 '보고 믿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 수의들을 한번만 보는 것으로도 부활의

진실성이 증명됐을 것이며, 그 성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수의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건드려지거나 접혀지거나

어떻게 되지 않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방이 나와 버린 빈 

번데기 껍질 같았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지요!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증거를 주셨습니다. 가장

놀랍고 위대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병고침이나, 귀신을

쫓는 것이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나,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입니다. 선지자

요나의 표적(마 12:38)이라 불리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일어났습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죽었고,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에는 무언가 분명한 원인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메시아이며,

대속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그 원인입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예수님이 메시아다!" "예수님 믿어야 천국에 간다!"

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오직 기독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