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터]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8. 03:32



(2) 믿음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한 두 번째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브리서 6:1)



저는 여거서 "신앙"이라는 번역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의미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헬라어직역 신약성경"의 번역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쉬아흐의 말씀의 초보를 떠나서 완전함을

향해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회개에 이어 기독교의 가장 초보적인 진리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하고

야고보가 재설명한 참 믿음이 아니라 구원파와 유사한 신앙주의의

먹구름이 교계를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믿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그 폐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참 믿음은 성경대로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산출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목회자

들이 야고보서를 비롯한 성경 4권을 정경에서 빼려했던 루터의 

영향을 받아 앵무새처럼 "오직 믿음, 오직 믿음"하며 믿음의 문자만

강조하고, 참 믿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적인 순중'(믿음에 따르는 행함)

과 율법의 행위가 다름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강조하는 것을 통합처럼 사악하게 율법주의 이단

으로 매도하거나, 합동이나 예성처럼 이단성이 있다고 헛소리 하는 

교단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오래 전 네비게이토에서 출판한 찰스 프라이스의 [진정한 그리

스도인]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주 탁월한 책인데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쓰는 용어 중에 가장 오해가 많은 몇 개만 열거하

라고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믿음을 들겠습니다."



저는 그 대목을 읽을 때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지만

간파하고 있는 자는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찰스 

피니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충고를 주어야 한다. 여기서도 

역시 죄인들에게 믿음을 설명해주어야만 하며 무엇이 믿음이며 

또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복음을 믿습니다.'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끔 교육을

받아왔을 뿐, 그가 그 복음을 믿지 않으며, 믿음에 대한 증거를 전혀

알지 못하며 결국 그의 믿음은 증거가 따르지 않는 인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

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기들이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란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믿고 있지 않으면서도 믿는다고 우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발생한 매우 위험한 발언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단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믿음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믿음이라는 단어의 개념과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지식은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어서 내용은 아는데

안 믿어집니다. 그것을 사람들을 지식적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들은 내용이 다 믿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믿으니까 구원 받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그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야고보가 지적한

"믿음이 있노라"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이들은 복음진리에 대한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이

있노라"에 해당되는 상태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야고보가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이라고 지적한 대로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참으로 통탄할 일

입니다.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길

원합니다.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제 앞에 서 계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 예수님에게 제가 말합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신 것도 그리고 언젠가

재림하실 것도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하고서 자신이 믿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단지 믿는

것이 아니라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밖에 둔 상태로는 아무리 믿고 고백해도 그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불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처럼 참 믿음은 예수님을 밖에 세워두지 않고 마음속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

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12)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 14:6).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입니다(요 11:25). 그리고 예수님이 영생입니다

(요일 5:20).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영접기도를 따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세우신 임금과 구주임을 깨닫고, 실제로 임금과 

구주로 인정하고 섬기기로 결단해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성경에는 이 진리가 분명하게 계시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여러 곳에 계시되어 있는지 성경을

읽으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예수님이 왕이심을 의미)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무엇으로? 단순히

구주로가 아니라 왕으로)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1-12)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6)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구주가 아니다!)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9-10)



이처럼 예수님은 구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영접하지 말고 반드시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이 진리는 제가 독창적으로 고안하여 혼자 별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사에 빛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구동성

으로 증거한 참 진리입니다. 여러분에게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주와 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는 결코 주님을 단순히 자기를 위하여 속죄하는 제사장으로만

영접하는 자가 아니다."



또,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두

관계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의 고난을

인정하고 용서와 영광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의 주권을 인정

하고 그의 다스림과 구원 방법에 순복하는 것이다."



또,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있는가? 대답해보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의 소유임을 확신한다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표어는

'황제이든지 아무것도 아니든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황제나 왕이나 군주가 아니시라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이다."



또, 에이든 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권 없는 구주는 없다. 그리스도는 구주이시며 주님이시다.

죄인이 그를 주로서 시인하지 않고도 구주로만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이것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의미임.)... 그리스도의

직무 중 어떤 것은 용납하고 다른 것은 거부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허락되어 있다는 개념이 현대의 이단이라고 나는 거듭 말한다

... 그리스도의 구주 되신 신분은 그의 주권과 영원히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믿음, 실로 믿음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은 그 자체에 복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롬 10:3). 또한 그 믿음의 대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롬 1:4)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7)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평생에 걸친 순종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고도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으면서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예수이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마 6:24).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믿음은 이런

선택과 결단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라고 고백한 것이 나오는데,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하는 것이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진리가 현대 교회에 와서 얼버무려 

졌습니다. 이 진리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밝히

증거하는 설교자들이 매우 드뭅니다. 따라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나오는 게리 콜린스의 탄식은

절대로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설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은 기꺼이 우리의

죄 된 행동들을 버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에 굴복시키는

것임을 일러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실권 없는 명목상의 왕인 영국 여왕이나 

일왕처럼 예수님을 명목상의 왕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이 그토록

많은 것입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그토록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명목상의 주님이 되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명목상의 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두려운 사실입니다. 이들 거짓 신자들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사셨습니다(행 20:28, 벧후 2:1, 계 5:9).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을 뿐 아니라 임금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어찌 하든지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자신의

실제적인 주님으로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한편,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6가지입니다.

그 중 가장 시급히 회복되어야할 것이 '회개'와 '믿음'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어떤 사람이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교리들을 그릇되게 전파할 때에는

사람들을 구원할 만한 권한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

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기본진리인

회개와 믿음에 관한 진리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에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달려 있습니다. 이 진리들이

회복되어야 신자들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들이 되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 두 가지 진리가 모든 교회

안에서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 진리들이 회복되지 않으면 참으로 큰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경고하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7장 13-27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열매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

니 불볍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니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말씀이 보여주듯이, 회개와 믿음 두 가지 진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넓은 길로 가다가 멸망 받게

됩니다. 또 교리적이고 전통적인 교회는 물론이요, 성령운동을 

하고 영성운동을 하는 지도자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자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가짜

목회자와 명목상의 신자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불행히도 이미 이런

일들이 한국 교회와 열방의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체 교회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이 말씀에서 "집을 세운다"는 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성경읽기, 기도, 성가대와 교회학교 봉사, 셀 그룹 활동, 전도와

새신자 양육 등 신앙 생활의 제반 모든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집을 짓는 것처럼 수고스러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회개하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그러니 회개와 믿음에 대한 바른 진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합니까?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주변에서 매도하고 

핍박해도 결코 이 진리들을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교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계속 

이 진리를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와 열방의 교회들 안에서 

이 진리가 회복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