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은혜 ♡ 글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자

놀라운 주의 사랑 2017. 2. 10. 22:55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자

 

 

 

이제까지 우리들은 신체의 치유, 악령으로부터 해방됨, 그리고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난 소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원(sozo)이라는 포괄적인 단어 하나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구원이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제공된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사도행전 4장 7절에 보면, 사도들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켰는지 질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 4:8-10)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어떻게 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서게 되었는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베드로는 핵심을 찌른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행 4:12)

 

 

이제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 4장 18절을 살펴보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보전하시리니(The Lord wi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work and

preserve me for His heavenly kingdom)

 

영어로 '보전하다'(preserve)라고 번역된 곳에 사도 바울은 헬라어로

구원하다(sozo)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바울은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 갈 때까지 계속 구원하실 것"(The Lord will save me and keep on

saving me)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역사는 지속적인 구원이다.

여러분은 믿는 그 순간부터 시작하여 현세를 벗어나 영원에 들어갈 때

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됨으로 인해 제공된 구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도전을 던지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 2:3)

 

 

구원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구원을 거부하는 이유는 믿지도

않고 원치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기독교인이

구원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등한히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공급하신 것들을 찾지 않고, 십자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나 소속 교단이

제시하는 해석을 받아들일 따름이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병을 앓게 하심으로써, 구원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찾게끔 하셨다. 나에게는 빠져나갈 다른 길이 없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여러분도 지금 그런 궁지로 몰아넣으셨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앞으로 어느 땐가,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닥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체적 측면을 등한히 여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축원한다.

 

 

 

교환을 고백하기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들을 내 것으로 삼는 가장 단순하고 실질적인

방법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홉

가지 교환 중 첫 두 가지를 이제 구두로 고백할 수 있는 문장을 제시한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용서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상처를 입음으로써 치유받게 되었다."

 

 

만약에 당신이 이 교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예수님, 당신의 희생을

통해 나에게 용서와 치유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 데릭 프린스의 [ 속 죄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