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다윗의 겸손의 겉옷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7:55





호세아 13장 1절에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함으로 망하였거늘" 


여기 사람들이 멸망하는 세 가지 단계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가 교만이고, 둘째가 범죄하는 것, 셋째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교만, 범죄, 멸망, 교만이 씨앗이나 싹과 같은 거고, 범죄는 자라고 꽃이 


피는 거고, 멸망이 그 열매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솔로몬이 말했는데


교만을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사람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교만이 왜 무서우냐? 교만이 들어오면 여기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함으로" 라고 말한 대로 범죄하게 됩니다.


사람이 교만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정결하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약간은 다르겠지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정결하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세리나 창기 같지도 않고"라고 말한 대로 교만의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자기를 정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정결합니다. 


그런데 정결하기 때문에 안심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가 정결해서 정결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니라."라고 


교만해지는 순간 자기가 정결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은혜의 줄기, 은혜의 흐름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교만하면 반드시 범죄합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의 부인 도리스 와그너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왜 목회자들이 타락하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사용하시던 귀한 목회자들이 왜 타락하게 되는가? 


첫 번째 이유가 너무 바빠지는 것이고, 


두 번째가 주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음란물을 접하게 되고 그러다 심해지게 되면 타락하게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근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통, 교제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측면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위대하게 사용했던 주의 종들이 왜 그렇게 타락하는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써서 교만해져서 타락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겸손할 때는 그런 죄들이나 타락을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겸손했기 때문에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 받고, 받은 은혜로 변화되고 


새로워지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귀하게 쓰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높여서 귀하게 쓰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교만이 들어옵니다.


그 교만 때문에 결국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무서운 것입니다.


제가 주변을 살펴 보아도, 마음이 교만해지면 꼭 타락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사역자들이나 사람들 속에 교만의 모양이라도 보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망하는지 아십니까?


불행히도 교만의 위험성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그럴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마음이 교만할 때 넘어지고, 정말 그런 죄를 지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이 교만해지니까 그런 죄들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교만으로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진 것을 빨리 막지 않으면 거기서 타락으로 넘어갑니다.


다른 범죄로 나아갑니다.


사탄이 천국에서 간음을 했습니까? 사탄이 천국에서 살인을 했습니까?


사탄은 천국에서 다른 죄를 안 지었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였습니다.


사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모든 죄들이 다 생겨났습니다.


교만은 교만한 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다른 죄들을 몰고 오고


다른 죄들의 원인이 됩니다.


'저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해도 교만이 들어 가면 그렇게 됩니다.


사탄도 절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거룩한 천사장입니다.


그런데 교만이 들어가니까 천국의 천사들이 알았던 사탄의 그 모습이 아니고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 사람은 간음할 사람이 아니야, 저 사람은 절대로 사기 칠 사람이 아니야.


도둑질할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교만이 들어가면 다른 죄가 나옵니다. 반드시 다른 죄를 짓게 됩니다.


교만이 시작입니다. 시작 때 이것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이래서 제가 교만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제 동생을 포함해서 부교역자들의 교만 문제를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권위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저는 사람에게 권위를 줍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만큼만 그 사람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권위 아래 들어오는 것보다 더 권위를 주면 그 사람 스스로를 반역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반역죄의 유혹에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권위 아래 들어가는 것만큼 권위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입니다.


권위는 지식만큼, 지혜만큼, 은사만큼, 일한 것만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는 자기가 권위 아래 들어간 것만큼 갖는 것입니다.


일대일로는 내가 주님의 권위 아래 굴복한 만큼 권위가 주어집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내 위에 세우신 권위자 안에 얼마나 거하느냐?


거기에 비례하여 권위가 주어집니다.


여기에 또 미혹이 있습니다. "나는 주님 말만 듣는다." 이것이 아주 위험합니다.


"나는 주님 음성만 듣는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그 교만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만 듣는다." 이 사람이 제일 속은 사람입니다.


제일 교만하고 못된 사람입니다. 


저는 이 설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교회 성도 중에 "나는 담임목사님의 권위에만


순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지교회에서 나가야합니다.


지교회의 교역자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악한 영들이 가져다준 속성이 그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제 앞에서 지교회의 교역자들을 비판하면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의 권위에 철저히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저는 속으로 '당신은 기회만 되면 나한테도 거역할 사람이다.' 


항상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 판단이 틀린 적이 없습니다.


지교회의 교역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타겟이 지교회 교역자지만 그 타겟이 제거되면 그 화살이 제게 옵니다.


본인들은 미혹이 되어서 이걸 모릅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습니다.


그게 교만의 미묘한 속임수요, 작전입니다. 그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내가 분명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의 권위 아래 분명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신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곡이고 얼마만큼 알곡입니까?


간단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설교 잘 듣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지식적인 겁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그건 권위 아래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때 들을 수 있는 음성입니다.


똑같이 나와서 설교 듣고 있고 지성을 갖고 있는데,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설교만 들으면 이게 쭉정이가 되고 염소가 됩니다.


그러나 권위 아래 들어가면 그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설교만 듣는 사람은 꼭 목회자를 대적 합니다.


'왜 설교를 저렇게 하시나? 우리 목사님은 왜 저런가?' 별게 다 흠이 됩니다.


그러나 권위 아래 들어가서 설교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따릅니다.


들짐승들은 목자가 따라 오라고 해도 따르지 않지만 양은 따릅니다.


이게 진짜 양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짜 완강한 염소입니까? 아니면 양입니까?


그 다음에 양 중에서도 진짜 양, 하나님이 다윗을 양무리 가운데서 선택하셔서


그 나라의 왕으로 높이신 것처럼 양무리 가운데서 선택해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귀하게 들어 쓰는 사람들.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예수님의 말씀에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양무리들 가운데서도 더 어린아이 같은 사람, 


양무리들 가운데서도 더 겸손한 사람, 그래서 더 주님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고 따라오고, 다른 성도들보다 주님의 음성을 더 잘 알아듣고 따라야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 교만을 버리세요. 겸손하세요. 


첫째, 하나님의 권위 아래 철저히 들어가서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께 순복하세요. 


둘째, 담임목사의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이 교회에 다닌다고 이 교회의 성도가 아닙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르느니라." 그래야 진짜 이 교회 성도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교만입니다


자기가 양이 못 되었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못 알아듣는 겁니다.


셋째로는 지교회의 교역자들의 권위 아래 들어가세요.


그게 피난처요, 산성이요, 높은 바위요, 안전한 곳입니다.


그 외의 곳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 권위 아래 들어가지 않으면 그곳은 이리들이, 늑대들이 활개치는 곳이요,


거기는 곰들이 잡아서 찢으려 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의 권위 아래 들어가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담임목사의 영적 권위 아래 들어가서, 설교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되며, 


지교회의 목회자들의 영적 권위 아래 들어가서 그분의 '아론과 훌'이 되세요.


그분들을 섬기는 종이 되세요. 그래야 진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서울 큰믿음교회 성도님들, 잘하고 계시지만 더 깊이 들어가세요.


겸손의 기초를 더 깊이 파고 더 깊이 들어가세요.


여러분이 겸손의 기초를 더 깊이 파는 만큼 정확하게 거기에 정비례해서


때가 되었을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고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 제 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