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기도할 때 정말로 하나님이 곁에 계신가요?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7:57





시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도다."


우리가 영적으로 바른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라야 됩니다.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 진리라야 됩니다.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 영혼이라야 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바르게 알면 여러분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기도 많이 하고 은사 받고 능력 받고 정확한 계시를 받고 응답을 받으면


여러분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분별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말씀 분별이 아닙니다.


영분별은 그 사람이 받고 있는 계시 분별이 아닙니다.


영분별은 그 사람의 영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짜 누구를 사랑하느냐? 무엇을 사랑하느냐?


너는 진짜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정말 무엇에 헌신하느냐?' 이게 영분별입니다.


다른 것을 기준 삼으면 미혹이 옵니다. 말씀을 영분별의 기준으로 삼으면


미혹이 옵니다. 사실 자신은 굉장히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이방인과 같고 영적으로 죽어 있고 잘못되어 있는데도 자기를 굉장한 신앙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은사와 능력과 계시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영분별하면 미혹이 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영을 분별하세요.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이 뭐냐? 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분별할 때 그 사람의 영을 보고 분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의 겉치장을 보지 않습니다. 


얼마나 알고 얼마나 체험하고 얼마나 받았는가? 그런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영을 보십니다. "너는 진짜 누구를 사랑하느냐? 


너는 진짜 무엇을 추구하느냐? 너는 진짜 무엇을 원하느냐? 네가 내 앞에 와서


입으로 뭐라고 기도하든지 나는 실제로는 너의 영의 소리를 듣고 있다.


네 영이 진짜 내 앞에서 호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 영이 진짜 


내 앞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왜 그렇게 많은 기도들이 응답되지 않는지 아십니까? 생각으로 구하는 것하고


그 사람의 영이 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영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영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육적인 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아님에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자식이 아픈 병에 걸려서 죽어갈 때 눈물 흘리면서 탄식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6절, 27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내 영에 간절하고 


진실한 소원이 되어 가지고 그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이때 응답이 옵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하는 적이 없습니다.


이런 기도은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의 영은 다른 것이 아니고 입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로 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 영이 정말로 원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느껴져야 합니다. 


손만 건드리면 닿을 정도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 중 언제 하나님이 느껴집니까? 진실하게 간구할 때 내 기도가 혼의 


외침이 아니고 내 기도가 육의 외침이 아니고 내 기도가 영의 외침일 때입니다.


내가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항상 알지만 거룩하고자 하는 열망과 소원이 내 영에서


일어나서 거룩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옆에 와 계십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이 가까이하십니다. 


겸손해야 된다는 것은 알지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하고 겸손을 원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겸손은 필요성을 아는 것하고 내 영혼이 겸손을 열망하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입니다. 


겸손의 필요성을 알고 겸손을 구하면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이 안 느껴집니다. 


겸손을 열망하면서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십니다.


손만 움직이면 바로 하나님이 닿을 정도로 옆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온 몸으로 느끼고, 그리고 주님이 내 기도를 지금 듣고 있고


이 기도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것을, 그런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내게 임할 것이란 것을 그냥 자기 영이 순간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실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고 


실제로 작용하고 역사하는 세계를 그대로 말씀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진실하게 간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제는 사랑하기를 진짜로 열망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없는데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기도할 때 뭐, 무릎을 꿇었으니까


기도하고, 기도하니까 주님께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세요.' 하나님은 


거기 안계십니다. 진짜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십니다.


'아,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시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들으신다.' 아닙니다. 기도는 영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소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머리에서 나오는 단어들의 나열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의 외침입니다. 


때때로 그런 생각이 안 듭니까? '주님 나를 거룩하게 해 달라니까요. 


주님, 나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니까요. 주님 나를 겸손하게 해 달라니까요. 


내가 돈 구하는 것도 아니고 명예 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응답이 없으십니까? 왜 이렇게 기도 해도 


변화가 없습니까?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하나님은 왜 제게 응답하지 않는 겁니까? 왜 제게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주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 침묵하십니까?'


왜? 그게 혼의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혼이 그 사람이 아니고 영이 그 사람입니다.


진짜 그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짜 그 사람은 겸손하게 되는 것도


거룩하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은 하나도 원하지 않는데 


지식과 정보에서 주입된 혼에서 필요성이 느껴지고 기도 제목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육으로 내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절대로 보좌에 못 올라갑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 기도가 하늘에 못 올라갑니다.


기도 시간에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이 사람이 입으로가 아니고 영으로 진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영으로 진짜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여러분, 영으로 겸손해지기를 원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거룩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사랑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자아의 죽음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정직하고 하나님 앞에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진짜로 자아의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까? 


주님 제가 진짜로 겸손을 원하고 있습니까?' 


어거스틴이 '하나님, 나를 정결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라고 


자기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를 해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나는 진짜로 자기를 부인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어떤 한계의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겸손을 원하기는 원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거룩을 원하기는 원합니다. 제가 자기를 비우기 원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계선 안에서 그러합니다.


"야, 변 목사! 너 서울에 와서 큰믿음교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하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사례비 넉넉하게 받고 좋은 대접받고 너 정말


내가 원하면 다 내려놓고 러시아로 갈래? 너 정말 원하면 중국으로 갈래?


너 정말 내가 원하면 북한으로 들어갈래? 너 멕시코 가봤지? 거리에서조차


은은히 인분 냄새가 나고 시설들이 다 형편없고,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너 정말 내가 원하면 그곳으로 갈래?"


이론적으로는 '예', 그런데 내 영이 100% 아멘은 안 합니다. 


'주님이 하라면 해야지.'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거룩을 추구하는데 왜 이렇게 거룩하게 되는 일이 더딥니까? 


우리는 자아의 죽음을 추구하는데 왜 이렇게 자아의 죽음이 더딥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는데 왜 이렇게 예수님을 아는 일이 더딥니까?


우리가 마음에 한계의 선을 긋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것을 지워버려야 되고


그것을 뛰어넘어야 됩니다. 


내가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이 말씀을 배운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선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앞에 고민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에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내 한계들을 뛰어 넘게 해 주옵소서.


내 한계들을 명백하게 알게 해 주옵소서. 겸손에 대한 내 한계, 거룩을 추구하면서도


완전히 거룩해지지 못하는 그러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거룩에 대한 내 한계,


자기를 부정하기를 원하면서도 완전히 자기 부정하지 못하는 그래서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진정으로 깊은 주님의 계시의 세계로,


능력의 세계로, 쓰임 받는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설프게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초라하고 가련한 상태, 주님, 나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옵소서.


주님, 내 힘으로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나라는 것 때문에 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 한계들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제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거머리처럼 무엇을 다고 다고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정말 자기 를 살피고


근본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의 작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말씀은 혼으로 알고 있는 것을 영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해서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는 것은 


혼에 있는 메세지를 영으로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을 내 소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을 내 열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을 내 영 속에  탄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가르쳐도 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설교는 죽은 설교입니다.


그 역할은 논리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임재하시고 그때 말씀을 좇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의해서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 절대로 말씀에 관한 지식만 자라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게 한국 교회에 임해 있는 재앙입니다. 


'화로다 나여, 화로다 한국 교회여.' 그게 영적인 큰 화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이 머리에 지식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하세요. 


그 말씀이 내 영에 내 마음에 새겨져서 소원이 되고 열망이 되고 


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게 간구하는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말씀을 들었다고 말씀대로 살 수 있나요? 심판만 강해질 뿐입니다. 


뭘 해야 될지 아는데 예비하지 않게 되니까 심판만 강해집니다.


말씀을 들었다고, 바르게 안다고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영으로 내려 와야 되고 그것이 기도의 영인데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하게 되어야 하고 그래야 주님께로부터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진짜 힘과 은혜가 와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 제 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