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은 미성숙한 신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5. 09:44




예수님은 미성숙한 신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 인물중 가장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오래도록 미성숙했고 많은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퉜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오해했으며 귀신을 내 쫓는데 
실패했고, 요한과 야고보마저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인들을 멸하려 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도 외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흠 많고 실수 많은 제자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시고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고전 13:7) 그런 사랑이
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랑을 우리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부모야말로
눈에 지짐이 붙어 있는 분들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항상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뾰쪽한 눈'부터 버리십시오.
사랑의 눈을 가지고 그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래야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을 참으로 사랑
할 뿐 아니라 끝까지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멜 노나 태리가 쓴 [예수님의 은은한 사랑의 
바람]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매우 
감동적인 간증이 나옵니다.

인도네시아 티모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멜 태리의 비위를 거스르는 자매가 하나 있었
습니다

그녀는 매우 신령한 자매였습니다. 부흥이 
시작된 후 몇 년 동안 주님은 그녀를 강력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녀를 통해 무려 다섯 명의 죽은 자가 살아
습니다. 그로 인해 그 자매는 교만해졌습
니다. 

어느날 미국에서 두 여인이 와서 그녀의 간증을 
듣고 매우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을 미국으로 초대해서 데려가야겠어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렇게 특별히 사용
하신 것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이 말에 그녀는 더욱 교만해졌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어느 날 멜 태리는 그녀의 교만 방자함에 마음이
상해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오, 예수님! 왜 저런 형편없는 여자를 쓰십니까?
그녀가 팀의 교제 분위기를 다 망치고 있습니다.
실수하셨어요. 실수도 보통 실수가 아니라고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부르러우면서도 엄하게 
그의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그녀를 사용한 것에 대해
너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넌 그 일에 대해
감사해야 해. 내가 저런 여자를 쓸 수 있기에 너
같은 사람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만일 내가
완벽한 사람을 사용한다면, 너는 생전 기회를 
갖지 못할 거야. 너는 내가 그녀의 삶을 향해
가진 그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부인을 멸시하고 있는 것이란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사과나무 과수원을 가진 한 농부가 살고 있었
단다. 한 번은 그가 자기 아들과 함께 나가서 
과수원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자, 이만하면 어떠냐?'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오, 형편 없군요.'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좋은 사과가 맺히지 않았어요. 그냥 시퍼렇고 
못생긴 사과들만 열렸는걸요. 아버지,
차라리 찍어버리는 편이 낫겠어요!' 

그러나 그 농부는 사과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단다. 
그는 아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몇 달만 지나면 그 작은 열매들이 크고 물이 
좋은 사과로 자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지금은 그 사과들이 자라는 계절이므로 
농부는 매우 흡족해 있었다. 지극히 정상인 
상태였거든."

주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내가 네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마. 넌 풋익은 과일같이 교만한 
그녀의 태도를 보고 화를 내는구나.

네가 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성장 과정의 지극히 정상인
단계에 와 있다. 그녀가 이런 단계를 거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녀가 거기서 머물지만은 않을 것
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는 더 나은 단계로
자라고 있는 중이란다.

나는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도 본단다.
나는 나의 사랑이 그녀를 온전하게 짓고 난 후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해 나올 것을 볼 수 있단다.

멜, 이해할 수 있겠니? 너 혹 내가 그 부인을 향해
갖고 있는 마음을 알고 싶지 않니? 그러면 아가서
4장 7절을 읽어 보아라"


멜 태리는 급히 그 구절을 펼쳐보았습니다. 거기
에는 놀랍게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그 부인이 예수님께
그렇게 귀한 존재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없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인을 향한 그의 태도는 예수님의
태도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주님께 자기의 죄를 회개했
습니다.

그 후, 실제로 그 부인에 대한 예수님의 예견은
정확히 실현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삶에서
교만을 말끔히 씻어 버리셨고, 그 부인은 상냥하
면서도 겸손한 크리스천으로 자라났습니다.
이 간증을 소개한 후 멜 태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침내는 그 사람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성숙할 것을 기대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남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다."


옳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마른 뼈들 속에서 군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현재의 모습만
본다면 그것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주님의 눈은 선지자의 눈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보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