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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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반영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2. 13. 20:57




5) 바울이 반영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사탄의 나라를 꺾고 온 우주적

구원(샬롬)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묵시적 틀을 견지하면서도, 그것의 인간론적

의미(즉, 그것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칭의론이나 입양론

등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사탄의 나라를 꺾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묵시적 틀을 가지고 선포하면서 그것의 인간론적

의미, 즉 죄 용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됨,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됨에 초점을 맞춘 것과 똑같습니다. 다시 한 번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앞서 우리는 불트만, 융엘 등 여러 학자들이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상응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울이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주장함을 보았습니다. 이런 주장은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알지도 못하면서 놀랍게 그것과 똑같은

복음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기적'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그의 서신들 여러 곳들에서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 자체를

여덟 번 사용합니다(롬 14:17; 고전 4:20; 6:9,10; 15:50; 갈 5:21; 골 4:11;

살전 2:11-12; 살후 1:5). 거기에 두 번에 걸쳐 나오는 '하나님 아들의 나라'

라는 표현까지(고전 15:24; 골 1:13) 포함하면 총 열 번 사용한 셈입니다.

이 현상을 두고 볼트만의 영향을 받아 바울의 예수 전승에 대한 지식이나

의존을 최소화 하려는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의 열쇠 언어인 '하나님 나라'

"여덟 번 밖에 안 썼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여덟 번 또는 열 번이나 썼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에도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데다 유대교 문서

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대단히 많이 쓴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뒤에 시작하겠지만

바울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와 관계하여 하신 가르침들(예를 들어, 이중 사랑의 

계명, 산상수훈 말씀들)과 그의 행태(죄인들을 용서하고 잔치를 나눔)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들에 '하나님 나라''그 사람의

아들(인자)'의 언어들은 서로 떨어져 나오지만, 그들은 상응하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의 '그 사람의 아들(인자)'에 대한 말씀들을 자주 반영하고

있다(참조. 살전 1:10; 3:13; 4:15-16; 5:2; 고전 9:19-23; 10:33; 갈 2:20 등)

는 사실도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같은 복음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칭의', '화해', '성화', '입양' 등 인간이 죄 용서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을 나타내는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되, 우리가 방금 로마서 1:3-4/

15:12; 8:31-39; 16:20; 고린도전서 15:23-28; 골로새서 1-13-14에서 본 

바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가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켜 간다는 묵시적 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죄인들의 회복에 집중했지만, 사실은 그것 자체가 사탄의 나라를 허물어가는 

것으로 이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는 

것을 이 땅의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누가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손가락'

으로, 마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강한 자인 사탄을 묶어 그의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석방해 가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현의 증거로 제시합니다(마 12:20-22/ 막 3:22-27/ 눅 11:14-23).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돌아와서 자기들이

귀신들도 정복했다고 하자, 예수께서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봤다고

합니다(눅 10:17-18). 이처럼 예수는 한편 하나님 나라의 묵시적 큰 틀을 유지

하면서, 사탄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죄인들의 회복,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습니다.


이 점은 주기도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우리를 이제 사탄의 시험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그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소서"가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는데, 그 사이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와 함께 "우리 죄를 용서하소"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하나님이 사탄의 나라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죄 용서와 생명 주심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죄인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켜 그 구원을

누리게 하는데 자신의 사역을 집중시켰습니다(마 9:13/ 막 2:17/ 눅 5:32; 

막 2:15-17 pars; 마 15:24; 눅 15:1-32; 19:1-10; 마 11:19/ 눅 7:34; 참조.

마 8:11/ 눅 13:29; 마 14:25 pars). 그는 사탄의 나라에서 돌이켜(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죄인들과 자주 잔치를 나눔으로써 종말의 하나님 나라

에서 누릴 구원을 시위(示威, demonstration)하며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선취

(先取)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적대자들로부터 '탐식하는 자요,

술 좋아하는 자이며 죄인들의 친구'라고 욕까지 먹은 것입니다(마 11:19/

눅 7:34). 이렇게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사탄의 나라를

박멸해 가는 것은 죄인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로 회복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부정어로 말하면 사탄의 나라를 극복하는 

것이고, 긍정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는 죄 용서와 죄인들의 회복/구원으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여(즉, 믿어) 사탄의 나라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 나라로 회복된 죄인들은 죄가 용서된, 의로운, 거룩한(하나님께 바쳐진,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것을 두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죄인들이 칭의 되고, 성화되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양되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예수는 그렇게 하나님 나라로 회복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고 그의 충만한 잔치에 참여한다는 그림으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구원, 곧 '영생'(신적 생명)을 약속하였습니다(또 탕자의 비유를 생각

하십시오). 마찬가지로 바울도 칭의 되고, 성화되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양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얻고(하나님 같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신성에 참여)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즉, 칭의 되고, 성화되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양된 자들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된 자들이므로 이제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끌어 쓸 수 있기 때문에(또는 그것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적 

생명, 곧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5:1-2; 6:22; 8:29-34 등)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제자도의 요구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탄의 나라에서 옮겨져 하나님 나라로 들어왔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요구입니다. 제자도란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으로서,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혼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두 마디로 요약했습니다(마 22:34-40/ 막 12:28-34/눅 10:

25-28). 산상수훈(마 5-7)은 이 이중 사랑 계명에 대한 강해를 그 중심에

두고 있는데,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은, 즉 자신이 새롭게 창조하고 모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이중 사랑 계명의 정신을 살려 철저히 지킴으로써(맘몬

을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할 것,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

까지 사랑할 것)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활을 해야 한다고 한 설교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한 이러한 요구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칭의 된

자들,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자들(곧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이전된 자들)에게 이중 사랑 계명 중심의 윤리적 삶을 사는 것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으라(빌 1:11)고 하는 요구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었으면(곧 하나님 나라로 이전되었으면) 당연히 하나님

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법, 그리스도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19-23에서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모세의 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법' 아래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인즉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여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면서 이웃을

섬기는 것, 즉 이중 사랑 계명인데,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법이므로

'그리스도의 법'이라고도 부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서 6:2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

하라." 칭의 된 자들은, 곧 의인들은 이 이중 사람의 계명, 곧 '그리스도의 법'

을 지킴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빌 1:11). 이것이 산상수훈의

말미에 나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이중 사랑의 계명을 준행하여 '선한 열매'

를 맺음과 같은 내용입니다(마 7:16:20).


이렇게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그 내용이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후자를 구원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김세윤 교수님의 [칭의와 성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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