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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은사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10. 17. 23:37




치유의 은사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즉 영적인 사람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고린도전서 12:1)


성령의 은사는 절대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가

기능하는데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이 없다면 교회는

고린도전서 1장에 기록되어 있는 영적인 장비들을 결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흑암의 권세를 공격하는 전투에 특히 필요한

부분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없다면, 성령의 임재와 권능이 드러남으로 인해 교회를

세워주는 그 풍성함을 결여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을 초자연적으로 다루시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듭남의 경험은 

초자연적입니다.


악마(devil)가 그의 인격과 그의 능력과 그의 활동에서 초자연적이란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같은 그리스도인

들이 초자연적인 성령의 세례와 그것에 동반되는 초자연적인 표적,

그리고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생각하기를 종종 회피하고 있습니다.


왜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평범한 사역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의 나타남,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초대교회는 초자연적인 것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다시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발견되는 것은

어디든, 언제나 초자연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요한복음 14:12)


그분은 또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도행전 1:8)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유산을 경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의 동역자들에게 권유했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고린도전서 12:1)


'이런 은사는 단지 교회시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주어졌던 것이어서,

오늘날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으로 논쟁하는 사람이 만일 

있다면, 우리는 오순절 날의 베드로 사도의 말을 인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 (사도행전 2:39)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시간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때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약속, 성령의 초자연적인 나타나심에 대한 약속은

초대교회만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성령께서

말씀하셨던 사람들)과 여러분의 자녀(그 다음 세대), 그리고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 즉, 우리 하나님이신 주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

(오늘날의 우리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계승하고 있는 유산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초자연적인 것들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장래 성령의 은사들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간단하지만, 정확히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린도전서 12:4)


사도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은사는 각각 다를지라도

그 근원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은, 사실 성령의 다양한 나타나심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서로 다른 방법들과 서로 구별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다양한 은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서로 다르게 기능합니다. 기적의

역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그것은 그가 몸에 입고 있던 외투(mantle)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 뱀으로 변했던 지팡이와 관계 있었습니다.


삼손의 경우, 그의 기적적인 힘은 그의 머리카락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순종의 표시이고 그래서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을 때, 그는 초자연적인 강력함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그 역사는 매우 달랐지만, 동일한 은사의 

나타남 이었습니다. 동일하신 한 분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은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보시는지는 

성령께서 가지고 계신 특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가 우리는 보다 나은 은사를

보다 열심히 구해야 하며 그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고

기록합니다.


제일 좋은 길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첫 번째로

구하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보다 잘 섬길 수 있도록,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고린도전서 14장에 주어져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영적 은사들을 우선시 한다면 매우 심각한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은사를 구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영적 은사는 성령의 다양한 나타나심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요케 되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

입니다. 


"치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적은 것은 왜입니까?" 

이 질문은 정당한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지혜의 말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적은 것은 왜입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지식의 말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은사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적은 것은 왜입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성령으로 믿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치유의 은사, 기적의 역사들,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 통변도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명칭을 말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할지라도 결코 성령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아홉가지 은사만으로 성령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더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완전한 지혜이시며 완전한 지식이신

분,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아는 이상으로 그 사람을 잘 알고 계시는 분,

그분은 어떤 은사를 누구에게 신뢰하여 맡기실까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물었던 사람과 동일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제게 부요하심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런데 그 질문을 하는 본인은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겨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십일조도 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가진 것에 대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신뢰하고

맡기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엔, 만일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뭔가 은사를

주신다면, 그들은 24시간 안에 그 은사를 잘못 사용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시는 일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시다

시피, 나는 내가 뭔가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만하여 말하는

일은 없습니다. 


캐트린 쿨만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내 스스로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왜인지 알고 싶습니까?

왜냐하면 어느 특별한 은사에도 큰 책임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것이 요구며,

그 은사에 대해서 말을 퍼뜨려 소문을 내거나 해서는 안되며, 언제나그 은사를 주신 분을 높여 드리는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찬양

드려야 할 것은 그 은사가 아니라 은사를 주신 분입니다.


"캐트린 쿨만은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누구를 치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싫증을 내지 않을까 하고 나는 때때로 생각

합니다. 


그래도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책임은 세심한 주의를 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께

영예를 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던 것을 매우 주의 깊게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멀지 않은 장래에 내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맡겨 주신 것에 대해서 해명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눈을 드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인것, 또 내가 말해왔던 것은 여러분이 상속받고 있는 것의 일부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그분께 양도해드리는 것을 모두 채워 주십니다. 


당신은 성령의 은사를 받길 원하십니까?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당신께 맡기시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충실하고

성실한 자가 되어 있는지 어떤지 살펴 보십시오. 


그리고 특히 성령의 은사는 단 한 가지의 이유만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서만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이하 어떤 것도, 아버지 하나님의 매우 귀중한 것을 남용하는 

것이 됩니다.


     

- 캐트린 쿨만 & 제이미 버킹햄의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