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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역동적 성격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11. 14. 00:00




복음의 역동적 성격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바울의 사도적 사역은 

단순한 설교자의 역활을 넘어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이 성도들의 삶에

실제적인 열매를 맺도록 땀 흘리는 목회자의 모습니다.


이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단순한 신학적 체계를 넘어 보다 생동적인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이런 사역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2:1). 바울의

표현을 빌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

을 사람의 말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2:13).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유사한 표현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사람의 말' 사이에 대조는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역사하는 복음과 그런 생명의 능력이 결여된 빈말에 지나지 않는 가르침

사이의 대조다.


곧 성령의 역사를 매개하는 살아있는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간적 지혜와의 대조인 것이다(고전 1:17-18; 2:1-5).

따라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은

곧 바울의 사역이 생동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동반하는 것, 곧 바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2:13) 말씀이었음을 보여준다.


본 서신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목회를 회고하는 방식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성도들이 '믿음 - 소망- 사랑'으로 요약되는

모법적인 삶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하면서(1:3),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목회와 성도들의 복음 수용 과정에 역사했던

성령의 능력과 연관시키고 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저 말로만 성도들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바울의 복음 선포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1:5). 굳이 긴 논증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므로 간단히 언급 되고 있긴

하지만, 바울의 복음 선포가 성령의 역사를 동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바울의 전반적인 사역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갈 3:1-5; 고전 2:1-5; 엡 1:13-14; 빌 3:3).


이처럼 성령에 기초한 바울의 복음 사역은 그의 어울리는 열매를 

산출할 수 있었다. 성령의 역사를 동반한 바울의 선교는 성도들 또한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1:6; 살후 2:13).


'많은 환란'이라는 적대적 상황에 대한 언급은 복음을 통해 역사한

성령의 역사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었음을 부각시킨다(cf. 갈 4:13-15).


거룩함에 관한 바울의 권면을 거역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는 4장의 경고 역시 성도들의 신앙이 

애초부터 성령 체험을 동반한 것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4:8).


바울의 복음 선포가 성령의 능력을 동반했다는 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그의 행보가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들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느냐'는 바울의 물음은 바로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1:5).

바울의 이런 모습은 2장 전체에 걸쳐 매우 구체적으로 회상되고 있는데,

이는 한 마디로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동했다'

는 말로 요약된다(2:10; 살후 3:7,9).


다소 단어의 조합이 다르지만 바울의 자기 묘사는 그가 성도들에게서

기대한 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과 사실상 일치한다(3:13; 5:23).

말하자면 바울은 회고의 형식을 빌려 다시 한 번 자신의 사도적 행보를

현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당연히 성도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수용하였다는 것 또한 단순한

심리적 흥분을 넘어선다. 이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받은 결과가

'우리와 주님' 곧 바울과 바울의 행보가 담아내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1:6; 살후 3:7).


이는 바울이 2장에서 상세히 회고하고 있는 그의 복음적 행보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입장에서 부지런히 본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는 바울의 움직임이 복음의 실제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였을 것이므로, 복음전파의 사역이 본받음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역동적 믿음은 금방 주변 지역에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이젠 이들이 직접 주변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의 

역활을 하게 되었다(1:7-8).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한다는 것, 복음의 선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동반한다는 것은 선포되는 복음이 애초부터 신학적 진술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1:5; 고전 1:17-18).


바울의 언어 속에서 말씀의 '역사함'이나(cf. 1장 3절의 '믿음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애초부터 구체적 삶을 변화시키는 도덕적 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바울의 복음 선포는 바로 이런 성령의 역사를 그 출발점

으로 하고 있다(롬 15:6). 다시 말해 바울의 복음은 처음부터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겨냥한 윤리적 메세지요 또 이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가진 역동적 메세지였다.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는 목적은 이방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그리하여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1:9).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저 지적, 심리적

상태를 넘어 구체적 삶의 방식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사역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돌아섬 / 회심' 역시

단순한 생각의 전환을 넘어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겨냥하는 것이다

(cf. 롬 12:1-2).


바울의 복음 사역은 바로 우상숭배로 규정되는 하나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 섬김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1:9). 잠시 후 다시 살피게 되겠지만, 이는 자신의 사도적 섬김의

목적이 성도들을 구원에로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바울의 진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2:12).




- 권연경 교수님의 [행위 없는 구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