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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교!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11. 6. 19:48




사랑의 종교



우리는 너무도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때로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어렸을 때  콘코디아에서 시장이 열렸을 때 내가 

자주 사먹었던 솜사탕을 떠올립니다. 정말 보기엔 아름다웠습니다.


근사한 핑크색 솜사탕이었습니다. "아빠 5센트밖에 안해. 아빠 부탁

이에요. 사주세요!" 그 시장이 설 때 내가 맨 처음으로 샀던 것은

솜사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먹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받아든 것은 단지

설탕 몇 알갱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크고 맛있어 보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도대체 나는 어떻게 그것을

먹으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5분도 지나지 않고 그것을 모두 먹어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먹었던 것은 겨우 몇 알갱이의 설탕 뿐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의 삶이란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솜사탕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며, 매우 허무하며, 매우 무익하고 또 매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 커다란 속임수입니다. 진정으로 순수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렵

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에도 성실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으며, 믿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친구들을 보고 "그들이 입으로 말하는 것은 계약서에 기록하는

것과 동일하다(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자주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종이에 서명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돈을 빌리러 와도 아버지는 그들로부터 어떤 차용의 형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친구들끼리 서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어떤 유대감도, 약속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스 쿨만 당신은 비관적인 사람입니까?"

오 여러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전혀 비관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을 때, 내 안에 비관(pessimism)이란 것은

조금도 넣지 않으셨습니다. 흐린 날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낙심되는 일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낙심거리를 바라보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직면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성공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어떤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들을 잘 지키면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허풍쟁이가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이 아침마다 어떻게 일어나는가로서 여러분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내 친구가 전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나에게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할 때, 자신의 최선을 세 배를 하려고 하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단지 충분한 만큼이 아니고, 자신의 최선도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세 배입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으며, 어떤 변명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지루해 하는 것 없이 시계만 쳐다보는 사람이 되지 않고 지금

그대로 만족하는 소처럼 되지도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 예술가처럼

'할 작정이었다'고 변명하는 사람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사무실이든, 핑계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든

자신의 핑계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핑계(alibi)라면, 그 부류에서

선두가 될만한 사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지만, 만일 내가 그에게 "그것을 끝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끝내려고 했습니다만..."하고 대답합니다. 그가 그

자리에서 즉시로 생각해 내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엔 어떤 핑계를 댈지

언제나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언제나 시계만 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 여러분 30분 남았습니다.

그러면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제 15분만 있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돌아갈 시간 5분 전에 그들은 이미 없어져 버립니다. 그들의 모습도 그림자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시계만 쳐다보는 사람들입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열중하여 일을 매우 즐기는 나머지

시계를 보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깨에

손을 얹고 "자 이제 돌아갑시다. 시간이 됐어요"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언제나 더 나은 지위로 승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매일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식사하는 방에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나는 그것을 피츠버그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액자 안에 있는 종이는 세월과

함께 낡았고 누렇게 변색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공에 이르는 길잡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인생 신조였습니다. 젊었던 나는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일부이지만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누구에게 친절히 대하고, 도와주려고 결심하십시오.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낙관하십시오.

가능한 때는 언제나 누군가를 세워주려고 항상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해와 같은 빛, 희망과 선의를 비추십시오.

걸으면서 꽃을 뿌리십시오.

날마다 기뻐하십시오.

지금 시간을 최대한으로 사십시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이런 것들을 

즐겁게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행복에 이르는 문이 넓게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신중하게 맞닥뜨릴 때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고 싶다면, 나가서 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바른 목적을 마음에 품고 그렇게 한다며, 만일 당신이 돌아올

어떤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만일 당신이 다른 이유나 목적없이

다만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의사도 이것보다 뛰어난 활력제를 처방하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크게

기뻐하며, 크게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비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행복하게

되어 기분좋게 살고 싶으시다면,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게 뭔가 친절한 일을

하십시오.



어미니의 "성공의 길잡이" 목록에 마지막 한 항목이 있습니다.



"당신은 종교를 믿어야 합니다.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어디에 있더라도,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만족케 합니다. 그것은 혼에 

이를 만큼 깊으며,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골로루 미칠만큼 넓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오늘날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종교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제정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의 종교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으며,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연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사랑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지나가는 것은 단 한 번 뿐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친절함이라도, 그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하루 하루를 감사하십시오. 날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십시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선행을 베푸십시오.


이것이 사랑의 종교입니다.




- 케더린 쿨만의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