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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갈급함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8. 26. 23:20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은 우리를 통해 흐르시고자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초막절 

끝 날에 예루살렘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고 증거한다.

 

성령은 물이 컵 속에 부어지듯 우리의 삶 속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물이 파이프 속에 부어지는 것에 더 가깝다. 컵에 물이 가득 

차면, 그냥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파이프 속에 부어지면, 

그것은 파이프를 통해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부요함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자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계 없으며 성령의 사역

과도 관계가 없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직후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주시겠다고 제자들

에게 약속하셨을 때, 그 권능은 증거하는 권능이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 약속은 제자들 각자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온 세계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게 하고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있다면 섬김에 대한 새로운 갈망

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신이 그 영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신약 성경이 교회에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는 까닭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총 22개의 능력들을 신약 성경은 "은사"라고 표현한다. 

이때, 모든 은사들이 다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한 교회에 허락된 은사는 

최대한 11개(언급된 은사들 가운데 정확히 반)였다. 이 은사들이 고린도

전서에 나온다. 또 고린도전서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동일하게 성령의 

은사로 볼 수 있는 다른 능력들도 있다. 신약 성경에는 찬양의 은사, 곡을 

쓰는 은사, 혹은 상담의 은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나 우리는 이런 

능력들도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데 유용한 은사로 인정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신령한 은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은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 하는 점이다.이때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는 도구로서 주어진다.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밷전 4:10)고 말했으며, 바울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고 기록했다.

 

다시 말해 은사는 자기만족이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도구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은사 

중심적이 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보다는 섬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의 은사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보다는 "당신은 주 예수 그리

스도를 섬기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라고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한 번도 내 은사가 무엇인지 분석해 보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있는 곳에서 잘 섬기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물어 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쁘게 섬기다 보면

자연히 자기 은사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고전 14:1)라고 촉구

할 때 그는 바로 이런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할 것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능력들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여 그 일을 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각자 맡은 일은 다르지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동일한 

목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진공청소기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손걸래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청소'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해야 할 일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당신의 삶 속에는 성령님이 임재해 계신가? 당신 안에 하나님을 섬기려는

소망이 자리하는가? 무슨 일이든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할 수 있음을 확신

하는가?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분을

기쁘시게 할 여러 일들을 이루려는 열망이 있는가? 만약 당신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면, 성령의 하시는 일들은 그리스도 중심이므로 다음 세 가지

갈망을 갖게 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갈망,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갈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갈망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갈망들과 더불어 그 일을 행할 능력도 갖춰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내용인 '예수님을 알고, 닮으며, 섬기려는 자세'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갈망'이란 단어가 매우 조심스럽게 선택 되었음을

알려준다. 어떤 것을 갈망한다는 것은 그를 필요로 하고 원한다는 의미이다.

갈망은 만족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단어를 "의에 주(영어로는 'hunger'로서 '갈망하다'와 같은

단어임-역자 주)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 5:6)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

셨다.

 

위의 말씀을 한 번 찬찬히 살펴 보라. 예수님은 "의로운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만족을 얻게 되리라고 약속하신 것이

다.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관심사로 더 깊이 인도하실 때,

주가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께 사명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만족감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바로 이 체험이야말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 찰스 프라이스 목사님의 [좋은 크리스천의 잘못된 믿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