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우리의 사명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아와야 할 옳은 데는 바로 거룩입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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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돌아와야 할

옳은 데는 바로 거룩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거룩)에서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돌아와야 할

옳은 데는 바로 '거룩'입니다.

 

... 교회사를 보면 종교개혁 이후

존 웨슬리나 찰스 피니 그리고

경건한 청교도들에 의해 교회가

거룩을 회복하는 듯 했지만 다시금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거룩을 잃어버린 채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다행이도 거룩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룩을 외치는 설교자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펜사콜라 대 부흥 때 거룩의 깃발이

다시 한 번 휘날렸고, 밥존스, 릭 조이너,

폴키스 데이비스 그리고 그 외 많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 다시 거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 박사 역시

거룩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회의

거룩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거룩해져야 하며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거룩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은 회개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을 말하면서 회개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살전 1:9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진짜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고

믿음으로써가 아니라 회개함으로써

입니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에 잘 나타납니다.

 

탕자의 비유에 보면 탕자가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챙긴 후에 아버지를 떠나

멀리 이방나라로 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역적으로만 멀리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방 나라에 가서 창기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이방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 탕자가 어떻게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옵니까?

 

단순히 믿습니다. 하고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려면

옛 생활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신앙 고백을 하고 아버지의 집에

와서 살면서 아버지의 돈으로 다시

창기들과 어울리는 것이 과연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떠나기 전처럼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가 회개에 대한

비유인 것입니다.

 

이 비유가 분명하게 가르쳐주듯이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제일 먼저 회개를

외치며 회개를 촉구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다음

구절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겔 18:30-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시대마다

있어왔던 선지자들의 외침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이방인이나 불신자가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십니다.

 

왜냐하면 믿는다고 하지만

참으로 회개하지 않은 자, 즉

진정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가

그들 안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록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그 위험을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이 거절하고

핍박할 것을 알면서도 회개를 촉구할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시는

것입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

왔느니라."

 

이처럼 돌아온다는 것은 전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

입니다.

 

이 말에 반감을 느끼지 마십시오.

 

분명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씀은

그 당시 예수님이 이방종교나

이단자들의 지도자들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것은 정통 유대교 안의

지도자들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정통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런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저는 많은 설교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길을 모른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시간이 되면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하려

하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적지 않은 설교자들이

사람을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

모를 뿐 아니라 어디로 인도하겠다고

의지조차 없이 그냥 설교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집회들을 가보아도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모이기 위해 모이고,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모이면

안됩니다.

 

이것은 회개가 된 후에 가능한

모임들입니다.

 

아직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하기 위해서

모여야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회개가 우리가

모이는 모임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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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승우 목사님의 [우리의 사명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