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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사람의 해석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5. 13. 19:14




하나님의 말씀, 사람의 해석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간의 상대성 간의 구분은 해석 차원에도 적용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성경이

무오하다는 교리는 여기서 또 한 번 굴절된다. 


내가 읽는 본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에 대한 나의 해석

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성경 본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은 성경 해석 작업의 주관성을 잘 드러내 준다. 이는 개인적 

적용이 우선권을 차지하는 경건의 시간의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이런 해석의 주관성은 예배의 문맥에서 행해지는 설교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 설교가 말씀 선포 행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론적 진리

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가르침이 설교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식의 비현실적 강변으로 둔갑해서도 안 될 일이다. 


나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세우기만 하고 그 해석이 나 자신의 해석

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씀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를

빙자한 자기숭배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

해 낸 여호와라"고 말하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오늘도 반복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실제로 설교 강단에서 지식도 없고 상식도 없고 책임감마저 없는 터무니

없는 해석으로 의식 있는 성도들을 짜증나게 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선포하는 설교가 성경의 메세지를 정확하게 해석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목회자들, 더 나아가 설교 강단을 개인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거침없이 변질시키는 목회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영적 피해를 입고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이 실제적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는 방식이 해명되어야 한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고백, 혹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진술이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내가 말씀을 어떻게 깨달았으며 내가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해석의 과정이 투명하게 해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과

무관한 직접 계시 운운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건강한 기독교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받아쓰기" 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릴 예언서조차도 

단순히 "위에서 불러주신" 것으로 읽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내는가?

성경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의사소통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예를 들어 보자. 성경이 들려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적 상식을 갖추기

바라시는가? 아니면 거기서 본받을 바를 찾으라는 것인가? 사실 대부분의 

설교는 이런 "모범적" 관점을 따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본받아야 할 모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도덕적 감수성인가? 


야곱 기사처럼 모호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시편의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할 때(시 22:1), 이 절규는 

어떻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시인의 입을 빙자한 하나님 

자신의 절규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인간적 절규는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 

욥기에 나오는 네 친구들에 대화는 어떤가? 욥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생각

이며, 친구들의 발언은 다 거짓에 속하는가(욥 42:7-8)? 아니면 욥의 말조차

엉터리라고 간주해야 하는가(욥 38:2 ; 42:3)? 혹은 욥에게 잘못 적용되기는

했지만 친구들의 진술 역시 하나님의 영감을 반영할 수 있는가? 그래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고 마음껏

축복해도 좋은 것인가? 


또한 "할례 받으면 끝장"이라는 바울의 위협(갈 5:2-4)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힐 수 있는가? 무조건 할례는 안 되는 것이며, 그래서 "할례"

받은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은 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갈라디아인들만 그렇다는 뜻인가? 바울 자신이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행 16:3)?

또 여자는 잠잠하라고 하는 바울의 말에는 목숨을 걸면서도 머리에 무언가를

쓰라는 명령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우리의 태도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라는 우리의 고백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위의 질문들을 곰곰이 음미해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석의 지침이 마련되지 않는 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사실 위험하기조차 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사사기의 구절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제대로 된 해석의 "왕"이 없을 때

사람들은 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석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주장하면서 실상 나의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강단에서는 목사 자신의 저급한 사상과 가치관이 혹은 목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말씀 선포"라는 거룩한 미명 아래 부지런히 선전

되고 있다. 성도들 역시 말씀 "적용"이라는 이름 아래 성경의 돌들을 

이리저리 쌓아 올려 내가 원하는 탑을 만든다. 


성경 내용을 배우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은 마치 좋은 재료들을 앞에 두고서도 정작 그 조리법을

모르는 사람과 같다. 그래서 모두 나름의 확신을 갖고 마음껏 "성경"이라는

재료를 요리해 먹는다.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하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경건한 만족을 누리면서 말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에 가깝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교회의 건강을 위해 더 시급한 것은 성경에 관한 교리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을 위한 실제적 원칙들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인하는 일은 성경 읽기의 중요한 전제이지만,

이런 원론적 진실을 강변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읽을 줄 알고 말씀으로써의 유익을 십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성경 무오설 주장엔 열심이면서도 말씀의 올바른 해석에는

무관심한 현실은, 우리의 열정의 원천이 말씀에 의한 실제적 유익 때문인지,

나 자신의 정치적인 욕구인지 되묻게 한다. 인간의 해석 없이는 말씀 전달이

가능하지 않다면,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참된 태도는 성경의 건전한 해석과

철저한 순종을 위한 실제적 노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신학교에서도 성경 해석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많은 목회자들의

불만이나 그토록 오래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성경을 어떻게 읽을지 막막

하다는 성도들의 하소연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우리의 열정에 짙은 의심의

그림자를 던진다. 성경통독, 성경백독 같은 말은 무성하지만 정작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는 무관심한 우리들은 성경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성경을

학대하는가? 성경을 제대로 이용하는가, 아니면 내 마음에 맞게 도용하는가?







- 권연경 교수님의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