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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 손!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4. 15. 22:19




겸 손




성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의 미덕들 중에 첫번째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 받았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전보다 더욱 강하고 확고하게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겸손이란 매우 총체적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겸손

만큼 배우기 어려운 공과는 없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모든 은사들 중에서 가장 드문 것이며, 모든 공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겸손은 연약함의 표시라고 우리가 느끼게끔 되어 있는 지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은 연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연약하고 

소심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과 성숙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남성 혹은 여성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든 미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인 겸손의 미덕을 내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여러분께 

영적으로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적으로 큰 신뢰성을 가진 사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안전하고 신뢰성이 있는 사람만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남성인지, 진정으로 위대한

여성인지 아는 첫 번째 테스트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또 다른 모든 미덕들의 견고한 토대입니다.



겸손으로서 자기 자신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겸손을 자랑

하거나, 자기의 겸손함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습니다. 매우

겸손하지만, 그것은 매우 자만하는 것입니다.


핀으로 풍선을 찔러 터지게 한 어린 여자 아이기 있습니다만 사람은 

때때로 그런 짓을 해보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핀을 들고서 그들의 영적 자부심을 터뜨리고 싶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모든 영적 자부심이 없어질 때에만, 항복한 유연한 그릇,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



사람은 영적으로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자기의 생명 안에 주님의 성품을 가지게

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 점점 더 항복하게 되며, 점점 더 거룩한 자가

되며, 점점 더 주님께 가까이 가며, 점점 더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인

겁쟁이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힘이 있으며,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표시입니다.


위대한 아브라함이 "티끌과 같은 나"(창세기 18:27)라고 말했던 날이 있었습

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보고 자신을 정확히 평가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나는 티끌과 같습니다"


오늘날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듯이 누군가에게 말씀하시고,

위대한 약속과 언약을 주시다면, 그런 사람은 매우 부풀어 올라서 교만하게

되어 옆에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옷의 단추가 떨어질 정도라도 그 사람은 이런 식으로 소문을 퍼뜨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나와 내 자손들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티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십시오. 모세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favor)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 3:11)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

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법정에서 인용되곤 합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열왕기상 3:7)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입니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자기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자기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충고를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많이

알면 알수록 자기가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자기의 지식을 다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시편의 어느 곳에서도,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던 사실을

말하는 부분은 한 군데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은 다윗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영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나팔을 불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온유하게 걸어갑니다. 그는 조용히 걸어

갑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능력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말하지만, 이 겸손이라는 공과는 배워야 할 모든 공과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며,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 떠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맨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공과였던 것입니다.



"편견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의 장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결점은 말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아는 

사이가 되어, 그의 방식을 이해할 때, 그때 그의 결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칭찬할 만한 일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을 누가 기록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신문과

마찬가지로 신선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그 말들을 읽은 후 나는 곰곰히 생각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를 명백히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또 우리의 형제도 명백히 해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편견을 가진 눈에서

덮개를 제거하고, 모든 인종, 모든 피부색, 모든 계급의 한 사람 한 사람에서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가치를 보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에게 이방인은 문제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기독교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신선한 하나님의 사랑의 세례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종교가 편견과 미움을 마음에 품게 하는 것이 되지 않고 사람들의

가능성을 명백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는 이중의 계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와 인간에 대한

계시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것처럼 사람을 보지 않을

때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

을 믿음과 함께 사람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기도를 하며 또 실행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날 모든 사람들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시고 

계시는 당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저를 도와 주시옵소서.

그 가능성이 아무리 덮개로 덮여져 있을지라도, 가령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에 대해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예수님이 듣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매우 조용히 허리에다 수건을 두르시고(마치 종처럼)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는데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요한복음 13:15-16)


위대한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기념비에 남기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죽은 후, 스스로를 위해 결코

위대한 기념비를 남기도록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념비는 누군가의 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 마태는 팬을 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록하면서 

마태 자신은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세리(publican)"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누가는 오늘날 "의사 누가"로 되어 있지만, 그가 기록한 복음서 안에 

누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의 직함같은 것은 당연히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을 숨긴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이 사랑

하신 제자"


또 바울은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성도이지만, 자기를 말할

때,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에벱소서 3:8)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 케더린 쿨만의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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