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은혜 ♡ 글

고난이여 올테면 오너라!

놀라운 주의 사랑 2018. 1. 31. 05:28

 

 

 

 

 

 

 

 

 

 

 

 

 

 

 

 

 

 

고난이여 올테면 오너라!

 

 

 

1940년 9월 25일 수요일,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바야흐로 가을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들판에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벼 이삭들이

마냥 풍요로워 보이기만 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들판을 건너온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고운 옷 갈아 입은 잠자리들은 높디높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애양원

지붕 위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날이다.

우리 가족이 수난의 길로 접어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에

비하면 애양원은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 되어있었다.

신사 참배 강요도 심하지 않았고 유형무형의 간섭도

덜한 편이었다. 나환자 수용소라는 특성 때문에 

어지간한 말썽은 눈감아주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악한 일본 순사들이 신사참배

반대를 강력히 주장하고 다니는 아버지를 결코

잊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애양원 교회에서나

다른 교회에서나 설교 때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

로서 하나님의 계명 중 제 1, 2 계명을 범하는

것이므로 절대 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흥집회 때마다 그랬고, 또 믿음의 신도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신사참배의 부당성에

대해 설교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가만히 놔둘 그들이

아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냘픈 몸을 내맡긴 채 시름없이

한들거리고 있는 코스모스 사이로 여수경찰서 소속

형사 두 명이 바삐 걸어왔다. 그들은 집에 당도하자

마자 다짜고짜 아버지를 찾았다.

 

"손 목사 집에 있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불청객의 목소리에 놀란

어머니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누구신지요?"

 

"우리는 여수경찰서에서 온 형사다.

손 목사를 연행하러 왔다."

 

아버지는 그 때 애양원교회에서 삼일밤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당회가 열리고 있었기에 거기에

참석하느라 아직 귀가하지 않은 상태였고

어머니만 일찍 돌아와 있었다. 

 

안계신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사방을 둘러 보았다. 거만하고 위압적인 눈빛이었다.

식구들은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룰 수 없었다. 가족은 물론 애양원

의 기둥인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 아버지가 잡혀가면

우리 가족과 애양원은 어찌 될 것인가.

 

하필 그 때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형사 두 명이 총알 같이 튀어나가 아버지를 낚아

채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아버지는 이미 사태를

짐작한 듯 조용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왜 그러느냐는

항변의 말 한 마디도, 잡혀가지 않으려는 저항의

몸짓도 없었다. 잠깐 뒤를 돌아보며 사색이 되어

서 있는 어머니에게 "걱정말고 기도나 해주구려."

했을 뿐이다. 

 

이 짧은 이별의 말을 던지고 떠난 아버지는

그날부터 해방될 때까지 무려 만 5년을 형무소

에서 보냈다. 나중에 전해들은 아버지의 죄목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과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그따위 죄목을 두려워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었다. 

 

잡혀간 아버지는 10개월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면 풀려 나올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기소당하여 복역을 하게 되는 건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시간이 자꾸만

흘러 갔다. 애양원 식구들과 우리 남매들의 불안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어머니의 심정 또한 말이 아니었다.

졸지에 가장을 잃어버렸으니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달리 무슨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할 따름이었다.

 

하루가 1년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잡혀가면 온갖 고초를 다 겪는다는데 경찰서에서

고문은 안 받는지, 몸은 건강한지,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나올 수 있는 건지 궁금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신변을 염려하는 마음도 컸지만 그보다

더 어머니의 강하게 지배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과

회유에 못이겨 혹시라도 아버지가 신앙의 절개를

꺾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경찰서에  곤역을

치룬 후 신사참배를 하고 풀려난 목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많았기에,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으면

서도 만에 하나 그런 나약한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날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젖먹이를 들쳐 업고 여수행

기차를 탔다.

 

여수에 도착한 어머니는 안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석방 여부를 알려고 사방으로 

수소문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알고 있는 분을 통해

유치장에서 밥해주고 심부름하는 이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를 찾아가 아버지에 대해 간곡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손 목사는 재판 마치고 어쩌면 오늘

내일로 여수 경찰서를 떠난다고 들었습니다."하고 

귀띔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 아버지가 여수

경찰서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일찍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모두 데리고 기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수 경찰서 앞으로 가서 무작정

기다렸다. 

 

10개월간 얼굴도 못 본 아버지를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리 형제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경찰서 문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큰오빠였다. 

 

"저기 아버지가 오신다!"

 

다들 큰오빠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거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머리를 빡빡

깎은 상태로 형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걸어 나오는 

아버지는 척 보기에도 풀려나오는 사람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어머니는 

형사들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틈을 타 얼른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채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어머니는 숨겨가지고 온

성경책을 펼쳤다. 반갑다고 인사나 나누고 안부나

물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급하

기만 했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여기 이 말씀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염려마오. 걱정 말고 기도나 해주구려."

 

아버지 역시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 형사가 걸어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잠깐 동안의 상면 그리고 또다시

긴 이별... 아버지는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께 펼쳐 보인 말씀이다. "네가 죽도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그때는 내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아 그 상황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의 일을 천천히 되짚어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들곤 한다. 어머니는 보통의 아내들처럼

남편의 육신을 삶을 염려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은 아버지가 당할 고초가 아니라

혹시 아버지가 마음이 약해져서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맨 처음 여수경찰서로 끌려 갔을 때가

아버지 나이 39세였다. 그곳에서 10개월간 미결수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불려나가 심문을 받았다. 금성

구웅 형사, 가루베 형사, 또 어떤 때는 요다 검사에게

거의 비슷한 내용의 모진 심문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깊어가는 여수경찰서의 밤... 가끔 유치장 쇠문 닫히는

소리가 "꽝꽝"하고 밤에 적막을 깨트린다. 그들은 밤새

도록 아버지를 협박하고 회유하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평소 공석이나 사석에서는 전도할 기회가 

많았으나 경찰서 형무소 관리들에게는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 감옥의 고통 속에서도 마음 문이 열리지 않는

불신자들을 전도한다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성서관,

심판과, 세계관, 국가관, 말세관, 재림관 등을 설명했다.

여기서는 지면상 간단히 쓴다[자세한 것은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에 기록되었다]. 

 

"... 이봐, 손 목사. 그래 다른 목사들은 물론 신학교수,

신학박사들까지 모두 신사참배를 하고 노회장, 총회장도

다 국민의식으로 시인하는데 당신만 왜 그리 독특하게

예수를 믿소?"

 

"본시 기독교는 지식적 종교가 아니고 신앙적 종교이며,

감정적 종교가 아니고 체험적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학사, 박사가 믿지 못하는 진리를 무식한 노인들이 

믿을 수 있고, 무식한 자들이 체험하는 사실을 박사,

학사가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지식적

세계와 신앙적 세계는 통하는 점도 있으나 통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자연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손 목사, 당신 보아하니 다루기가 곤란한 사람 같은데

신사참배하기 전에는 햇빛 보기가 힘들 것이요. 그리 

아시오!"

 

"내 몸음 비록 형무소에 감금되어 있으나 

내 신앙은 감금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특히 말세론이나 일본의

천황숭배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변함없이 명쾌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

하나가 올가미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올가미에 두려움

없이 목을 디밀었다. 

 

어느 날인가는 가루베 형사가 성경에 대해 또 물어왔다.

아버지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성경에 대해

설명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책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여 그 예언을 증명한 책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이 살아갈 도리와 내세의 부활을

밝힌 책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 되는 신이시며, 예수는 그분의 아들 되는 신이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은 일체가 되며,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것이냐?"

 

가루베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싸늘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차근차근 하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

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주재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천하만민의 심판자이십니다."

 

"그게 다 무슨 뜻인가?"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함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현 세상에 내려보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죄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의이시라 함은 모든

사람의 의와 불의를 밝혀 의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불의에

대해서는 벌을 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의란 바른 것을 말하

는데 그 기준은 모두 성경에 근거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의입니다."

 

"그러면 교육칙어는 의인가 불의인가?"

 

가루베가 아버지의 설명을 중도에서 자르며 끼어들었다.

 

"교육칙어라도 성경의 취지에 일치하면 의로운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불의입니다."

 

가루베는 책상을 꽝 소리나게 치며 버럭 화를 냈다.

 

"이런 괘씸한..."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하던 말을 계속해 나갔다.

 

"셋째, 하나님은 빛이시라 함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게 죄를 자각하게 하고 나아가 심판의 날에 

가게 될 천국과 지옥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영이시라 함은 눈으로

는 볼 수 없으나 인간의 심중에 계시는 무소부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고 못하실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라 함은 천지만물은

모두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

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그렇다는 말이냐?"

 

"물론입니다. 일본은 물론 세계각국은 전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전세계와 인류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

입니다."

 

"예수쟁이치고 말 못하는 놈 없다더니만. 계속해봐."

 

가루베는 치미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듯 신음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말을 채촉했다.

 

"여섯째, 하나님은 주재자시라 함은 세상 모든 이치가,

사람의 나고 죽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천황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호흡, 국토와 국민을

통치할 지위와 권력을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말세에 만인의 심판자시라 함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무궁세계가 오면 불신자들은 준엄한 벌을 받아

지옥으로 추방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신도만이 눈물도

괴로움도 병도 죽음도 없는 참 행복한 세계에 남게 됨을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이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한 번은 요다 검사에 불려가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문을 받았다.

 

"그대는 1938년 구례에서 개최된 조선기독교 순천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순천선교회는 그 결의에 반대해 순천노회와 분리됐다고

하는데 그 일도 알고 있는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애양원교회도 그래서 순천노회에서 분리되었는가?"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시인했다. 요다 검사는

전의를 다지는 듯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나서 본격적

으로 아버지의 신앙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대는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아버지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를 주재하시며

절대불멸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는가?"

 

"다른 신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높은 

지위의 신은 없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신사참배에 대해 그대가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해보라."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애양원이나 초빙되어 간 다른

교회에서 늘 설교하던 말씀 그대로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 외의 신에게 절하지 말라', '내 앞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고, 신사의 신은 

신이기는 하나 하나님은 아니며, 신의 형상을 받들어

모셨으니 분명한 우상이므로 참배해서는 안 됩니다.

우상숭배하고 예배하면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반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

 

"첫째, 신사참배, 동방요배는 하나님이 금하신 

계명이니 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하는 명령도

거역할 수 없을진대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둘째, 우상에게 절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을

얻고자 함인데 하나님 계명을 어기고 어찌 구원을

바라겠습니까? 셋째, 국민된 도리로서 못하겠습니다.

세계 역사를 볼 때 우상숭배하는 나라는 망하고

예수 잘 믿는 나라는 축복받는 것을 뻔히 알면서

국민의 1인으로서 나라가 망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보 손 목사, 우리 천황폐하께서는 현인신이다.

즉, 신의 아들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1억 국민이

다 그렇게 믿는데 어찌 손 목사만 이를 믿지 않는가?"

하며 검사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1억 인이 그렇게 믿는다 해도 나는 그렇게 믿지 않소.

현인신이란 하나님 아들 밖에는 있을 수 없소.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오. 천황은 한 인간의 아들입니다. 

천황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시오. 나도 

예수가 하나님 아들 현인신이라는 것을 말하겠소."

하며 아버지는 힘주어 말했다. 검사가 다시 물었다.

 

"손 목사가 말하시오, 무슨 증거로 그러는지..."

 

"첫째 증거로 이 땅에 탄생하실 예수에 대해서는

4천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탄생하셨습

니다. 그러나 천황의 탄생은 언제 예언되어 있었습니까?

둘째,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몸에서 탄생

하셨습니다. 천황은 우리와 같은 양부모에게서 탄생

했습니다. 셋째, 예수는 33년간 지상에서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는데 천황은 기사와 이적 등을 행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넷째, 예수는 인생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천황은 인간의 죄를 대속

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이 없습니다. 다섯째, 예수는

죽은 후 3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역대 천황 중 그 누가

부활한 사실이 있습니까? 여섯째, 예수는 부활 후 그의

제자들과 함께 40일간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언, 성취, 처녀 탄생, 기사, 이적, 속죄, 구원, 부활,

승천 같은 사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천황이 신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조건이 어디있습니까?"

 

"하, 이거 안 되겠네."하며 검사는 어이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갔다. 이외에도 간수들과 문답한 조서가 

많지만 다 소개할 수 없다. 

 

이렇게 아버지는 여수 경찰서에서 10개월간 시달리다

마침내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 생명이 위독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검사 앞에 불려 갈 때도 걸을 기력이 없어

들것에 실려 다녔다. 극도로 쇠약해진 건강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렇듯 강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토대로 신념을 굽히지 않으니

일본 경찰이 아버지를 석방해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들 마음은 더욱 강퍅해졌다. 그 형사는 아버지를

기소할 목적으로 10개월간 아버지와 문답한 것을

500여 페이지의 조서로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했다.

이로서 아버지는 미결수 생활을 마치고 광주 구치소

로 가게 되었다.

 

1941년 7월 21일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에서 광주구치소

로 옮겨가 그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4일에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확정받고 그후 곧바로 광주 

형무소로 옮겨 복역하게 되었다.

 

 

피의자 심문 조서 제 - 회

 

-피의자 대촌양원 인-

 

우 치안 유지법 위반죄 피의 사건에 대해서 소화 15년 

10월 22일 여수경찰서 사법 경찰이 조선총독부 전라남도

형사 금성구운의 입회 하에 피의자에 대해서 심문하기를

좌와 여히함.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에서 미결수로 있을 때에도 때때로

끌려나가 동방요배, 신사참배, 정오묵도 등을 거부하느라

죽을 힘을 다했다. 그렇게 싸워 천신만고 끝에 이겨왔는데

앞으로 광주 형무소로 가면 1년 반 동안 더 엄청난 고초를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복역 죄수로서 이 일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인간의 육신을 가진 아버지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힘을 다해 결사적으로 부르짖기 시작했다. 

 

"주님! 저도 인간입니다. 어떤 악형에 부딪힐지라도 싸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주 위해 받는 아픔은 주 위해 

사는 자의 면치 못할 일이오며, 내 몸에서 석 되밖에 안 되는

피는 주 위해 쏟고 2백개의 뼈는 주 위해 다 부러뜨리면

내 할 일 다한 것이외다. 모든 근심걱정은 내 알바 아니오니

주님 이끄시는 대로 따르리이다. 오! 주여 힘과 용맹을 주소서!"

 

이렇게 7일간 기도하고 나니 마음은 강철같이 강해지고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10여 일 후 곧바로

광주지방법원으로 기소되어 갔다. 광주형무소에서도 

동방요배, 신사참배, 정오묵도 등이 꼬리를 물고 부딪혀

왔으나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아픔을 생각하며

싸워나갔다. 물론 그러자니 많은 고초가 뒤따랐다. 그들은

고함치며 때리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

신앙의 절개를 꺾으려고 했다. 이를 이겨내는 되는 그만큼

괴로움과 고통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글로 다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형기 만료일인 1943년 5월 17일에도 풀려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1년 6개월을 광주

형무소에서 보냈지만 아버지 신앙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국에서는 아버지 신앙 문제를 놓고 재검토 했다.

'손 목사는 밖에 나가면 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할 것이 

뻔하니 절대로 내보내면 안 되겠다'고 하여, '예방구금소로

보낸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옥고를 치르고도 전향을

거부하여 종신형 언도를 받은 것이다. 당시 상황은 아버지가

그해 6월 8일에 할아버지께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 

 

 

『손꼽아 기다리시던 5월 17일에 얼마나 놀라셨으며 근심

하셨나이까? 불초양원은 무슨 말로써 어떻게 위안을 드리리

이까? 아무 도리 없사옵고 다만 아브라함과 욥 같이 반석같은

그 신앙으로 스스로 위안과 복을 받으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5월 20일에 예방 구금소로 가야된다는 언도를 받았습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변함없이 신앙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월 20일에 항고서를 대구복심법원에 접수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불편이나 고통을 면해 보려는 생각에서가 아니고

대구 가서 그곳 간수들에게 성경 교리를 증거(전도)하려는 의도

였습니다. 아마 이 달 20일 경이나 그 안으로 대구에 가면

8월 중으로 끝이 나서 경성구금소로 갈 것입니다. 경성의

서대문형무소 안에 있는 예방구금소라 가게 됩니다. 

 

구금소에서는 편지나 면회는 매월 누구나 몇 번이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만은 자유롭게 생활한다 하니 염려하지

마시고, 만주에 있는 동생 집에 가실 때는 면회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9월 9일에 적은 시다.

 

 

 

『가을 까마귀 뭇 때들은 때를 찾아 날아오고 

3월 3일 왔던 제비 고향 강남 찾아가나

고향 떠난 옥중 고객 돌아갈 길 막연하다.

아침 저녁 찬 바람 가을 소식 전해주고

천고마비 금품냉월 낙엽 또한 귀근하되

고향 떠난 3년 너머 돌아갈 길 막연하다.

우주 만유 모든 징조 인생 가을 전해주고

억천만인 모든 죄악 심판주를 촉진하되

준비 없는 이내 몸은 천당고향 막연하다. 

 

 

광주형무소에 있을 때의 일이다. 만기가 가까워질 

무렵 형무소 측에서는 아버지의 신앙을 꺾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이것을

이용할 생각으로 어느날 소장이 만주에 있는 할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당신 아들이 지금 몸이 약해서 죽게 되었으니, 어서

고집 꺾고 신사참배하여 나오도록 편지 좀 하시오."

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은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옥중에서 죽으면 죽었지 신사참배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정반대의 글을 썼다. 이 편지를

본 소장은 "요 괘씸한..."하며 아버지에게 다가와 

"당신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가정이 풍비박산

났으니 고집 꺾고 어서 나와 가정을 회복시키라고 

쓰여 있소."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술수에

넘어갈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소.

내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리 없소. 어디 편지 좀

봅시다."

 

그러자 소장은 편지를 확 집어던지면서 "이런 독사 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만"

하고 화를 벌컥 내며 나가버렸다.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은 박상건 목사님

(만주에서 할아버지 장례식을 인도한 목사)이 훗날

들려주었다.


 

 

 

- 손동희 권사님의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