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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때에 대한 대처

놀라운 주의 사랑 2017. 6. 26. 22:11

 

 

 

고통의 때에 대한 대처(딤후 3:1, 2상)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왜 바울은 본 장은 디모데에게 "네게 이것을 알라"는 아주 어세가 

강한 명령으로 시작하는가? 요컨대 복음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의

실재는 분명한 것이었다.

 

바울 자신은 복음에 대한 그의 충성심 때문에 체포되었고, 사슬에

묶이게 되었고, 그리고 구금되었었다(1:11, 12 ; 2:9).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디모데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을 배척하였다

(1:15). 그리고 본 서신의 앞머리에서 사도는 그의 젊은 친구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그의 고난의

몫을 분담하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주님과 더불어 다스리게 될 그 날을 

소망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인내해야 될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는 디모데에게 나쁜 선생들에 의해 전파된 '언쟁들', '망령되고 

헛된 말' 및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들' 뒤에 마귀 자신의 악한 모습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에게 경고해 주었다(1:8 ; 2:3, 11, 12, 14, 16,

23, 26). 

 

그런데 무슨 이유로 사도는 디모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라고

그에게 분부하고 있는가? 확실히 그 이유는 바울이, 진리에 대한

반대가 일시적인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라 시대의 변치 않는 연속적인

특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디모데가

잠시 동안만 수그리고 잠잠히 있으면 폭풍이 지나갈 것이라고 고대

으로써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질까 우려했던 것 같다.

 

우리도 역시 '이것을 알아야'하며, 그리고 우리가 복음의 진리 안에서

확고하게 서 있는다면 우리를 에워싼 위험들과 고통들이 곧 제거될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될 것이다. 

 

다음에 바울은 '말세'를 언급하고 있다. 이 용어를 미래시대에 그리스

도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 바로 직전의 세대로 적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용어는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가

(구약에 약속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했으므로 그의 강림과 

더불어 옛 시대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마지막 날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신약성경 저자들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순절 날에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말세에' 그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실 것이라고 말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했으며,

그리고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베드로는 말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 예언이

언급했던 '말세'가 임했었다(행 2:14-17).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도 옛적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

셨던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개역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로

번역됨)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주장으로 시작

하고 있다(히 1:1, 2).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말세에 살고

있는 중이다. 이 마지막 날들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성자에

의해 선도되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장에서 진술되고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제에 대한 묘사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경과되고 있는 전체의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말세에 그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보편적 상황을 포함시키고 있다." '말세'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을 통하여 이것이 추론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그가 살아서 보지 못할 어떤 미래 시기에 관한 예언들이 아니라(예컨데)

어떤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avoid)는 명령을 포함하여(5절) 그의

현재 사역과 관계를 가진 교훈들이라는 것은 그 사실을 통해서도 분명

하게 드러난다. 

 

디모데는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말세'에 벌써 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날들이 미래에 더욱 나빠질

것이겠지만(13절) 그러나 지금일지라도 시절은 악하고 위험하기 

그지없다.

 

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고 바울은 덧붙여 말하고 있다.

디모데가 말세에 대해 알아야 될 것은 그 날들이 한결같이 연속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날들이 '고통하는 때'를 내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교회 역사는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증해준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범선이 바다에 출범했을 때, 순탄한 여러움 없는 항해는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폭풍우와 심지어 태풍과도 싸워왔다.

 

이 때들을 바울은 '고통하는 때'로 나타낸다. 헬라어 형용사 [칼레포스]는

기본적으로 '거침'(hard), 또는 '어려운'(difficult)을 의미하며,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예컨대 육체적 고통이나 심리적 고통의 경우에), 또는

'다루기 어려운, 격렬한, 위험스러운, 위협적인' 등을 암시한다. 이 단어는

고전 헬라어에서 위험스러운 야수들과 격노하는 바다의 의미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야수처럼 사납고 길들지 않았고 마태가 '저희는 심히 사나와 [칼레포스]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다'(마 8:28)고 묘사한 가다라의 두 귀신들의

사건이 기록된 이야기에서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회가 말세에 기대해야

하는 때의 종류를 생각나게 해준다. 말세의 날들은 견디기 어렵고 대항하기

어려운 고통스럽고 위험스러운 날들이 될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이것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즉시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회가 견뎌야 할 위협적인 시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타락한 사람들, 악인들, 성격이 비뚤어진 사람들,

행동이 이기적이고 망령된 사람들, 하나님과 그의 법에 적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참조, 롬 8:7), 그리고 교회에 악과 이단과 죽은 종교를 전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에 대한 바울의 상세한 설명을 고찰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의 서론들을 깊이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는 중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그와 더불어

그 날들을 전달해 주셨다. 둘째, 이 날들은 위험과 고통의 때를 내포할 것이다.

셋째, 그 날들은 악인들의 행위들의 결과가 될 것이다. 넷째,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하며, 그것에 관해 분명하게 알아야 되며, 그리고 대비해야 될 것이다. 

 


 

- 죤스토트 목사님의 [디모데후서 강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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