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교회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2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 1. 성령 운동을 해야 성경적이고 바른 교회입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6:49




2 성령님이 역사하는 교회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충만입니다. 껍데기가 아닙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

이고, 교회다운 교회는 충만합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비어 있지 않고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

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

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필립 얀시는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라는 책에서 이

렇게 썼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7). 즉 

처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떠남으로써 도리어 다른 

사람들의 몸을 통해 일이 계속되도록 계획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제자들은 아무도 예

수님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떠나시는 

게 우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그들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눅 22:19)을 나눠 먹었다. 그 

안에 담긴 엄청난 뜻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순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이 다시 

아들을 통해 그들에게 위임되고 있었다. '아버지

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

상에 보내었고'(요 17:18)라고 예수님은 기도했다... 

승천한 이후 예수님은 언제나 이 땅에서 자신이 살

았던 삶을 계속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몸을 찾

다고 말하면 지나칠까요? 교회란 사실 성육신의

연장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시는 주된 

법이라 할 수 있다."


   승천하시고 난 이후 예수님은 몸을 찾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 나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신 것은 달리 말

해서 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대신할 몸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

회는 성육신의 연장입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온전히 이루신 것

럼, 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예배드리고, 세례주고,

성례식 하고, 성가대 하고, 성경 공부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해야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

수님이 이 땅에 계셨다면 하실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므로 신학자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종교적인 목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제대로 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므로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합

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으면 하셨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요 14:12). 교회는 마땅히 예수님

이 하신 일을 해야 하며 그보다 큰일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복음서(예수님이 하신 일)를 재현하

고 사도행전(그보다 더 큰일)을 재현해야 합니다.

   전에 기독교연합신문 기사를 읽어 보았는데, 지난

10년간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천주

교가 74%나 성장하여 5년 안에 기독교를 추월할 전

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4% 성장을 한 반면

기독교는 1.6%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

게 되었을까요? 렇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생명 없는 불교에게 뒤지는 이런 불가

사의한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교회가 정상이 아니

라서 그렇습니다. 즉 교회가 잘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희석시키고 진리를 타협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학자들

이나 목사들이 머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실제적인 몸을 통해서, 앞으로 

세워질 몸 된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

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

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복음서를 통해서 그것을

우리가 파악하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거두절미하고 핵심을 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이시지만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습

니다. 예수님은 죄만 없으실 뿐 아니라 우리와 똑같

았습니다. 병도 고칠 수 없었고 귀신을 쫓을 수도 없

으셨습니다.


   빌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

"


   예수님은 도성인신하기 전에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셨습니다. 또 지금도 성자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과 동등 됨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셔

서 사실 때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셨습

니다. 자신의 신성을 다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

나 전능, 그리고 무소부재의 속성을 사용하지 않았습

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모두 비우고, 한 인간으로

서 오로지 성령님께 의존하여 사역하셨습니다. 예수

님은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똑같은 입장이 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인

간으로서 기적을 행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해 증거가 되는 구

절들이 많습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에게 임하였느니라." 


   대게 아무 생각 없이 이 구절을 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왜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

까? 성자 하나님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할까요?

성자 하나님에게 성령의 은사가 필요합니까? 성령께

있는 능력이 그분께는 없습니까? 예수님이 왜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역하셨다

면 성령을 힘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내쫓

으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비우고 한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

였더라. "


  이처럼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는 예수님은 설교하실 수 

없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 병을 고치실 수

없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 귀신을 내 쫓을

수 없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에 이렇

게 의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자기를 비우고 한 인간

으로서 사역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희한하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요한복

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했

는데,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음

으로써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수많은 목사님들이 성령 없이 설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강대상에서 인간의 어설픈 지혜와 판단으로

진리를 혼잡케 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얼마나 대조

됩니까?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

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

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

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치유, 예수님이 행

하신 모든 축사,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 그것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의지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앞으

로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 미리 모범을 보여 주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성령충만 해야 합니

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성령

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

다. 그래서 교회가 성경의 완성과 함께 시작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 될 때 성경은 아직 미완성이

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제 생각

에는 이러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성경도 완성이 안 되었는데 교회를 어떻게

세워? 빨리 요한을 하늘로 불러올려라! 요한으로 하

여금 계시록을 쓰게 해서 성경을 완성해야 교회를 

세우지. 성경도 없는데 무슨 교회야? 성경도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세워?"


   이게 종교적인 목사들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성경이 미완성인데도 교회를

세우는 일을 강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성경이

미완성인데도, 오순절 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던 교회는 맨날 모여서 강해 설교하고,

제자 훈련하고, 성경 공부나 하는 이런 지적이고 종교

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그리셨

던 교회는, 예수님이 성령 충만해서 말씀을 전하고,

성령충만해서 병을 고치고, 성령 충만해서 귀신 쫓는

것과 같은 그런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직 미완성인데도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교회를 

출범시키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계획을 가지고, 교회를 세

우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그런 기대를 고신이 저버

렸습니다. 그리고 통합을 위시한 많은 교회들이 저버

렸습니다. 물론 그런 교단들 안에서 성령 충만한 교

회들이 있지만 다수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

렸습니다. 다른 교단들 역시 오십보백보입니다. 

다수의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지적이고 

종교적이 되어 성령의 은사와 역사들을 터부시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하는 교회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한 실책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불교에게 뒤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교회

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복음서를 읽어 보십시오. 예수

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

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님이 하

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일을 했다면 지금쯤 사람들을

수용할 장소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라도 우리는 종교성에서 벗어나서 성령의 권능과 은사

를 사모하고 구해야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예수님보다 큰일을 하는 교회로 바꿔

야 합니다. 그러면 평양대부흥, 평양대부흥 하는데

양대부흥의 족히 100배 되는 부흥이 쓰나미처럼

이 땅을 휩쓸게 될 것 입니다.

   



   1. 성령 운동을 해야 성경적이고 

바른 교회입니다.



   목회자는 물론 많은 신자들이 당연히 자신이 기독

교의 교리에 정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초보적인 교리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목회자들

뿐 아니라 심지어 신학대학의 교수님들조차 기독교의

초보적인 교리에 심각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도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

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

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

지니라."


   이 여섯 가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초를 똑바로 놓지

않고 기둥은 세워서 뭐합니까? 창문을 내고, 벽을 쌓

고, 지붕 덮으면 뭐합니까? 지금 그런 식으로 수많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비바람이 오면 기

초가 허물어지게 생겼는데 기둥만 잘 세우고, 벽만 잘

쌓고, 창문만 잘 달고, 실내장식이나 잘하고 목사들의

상당수가 현재 이런 방식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에 관해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나 알지, 성경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이 여섯 가지는 기독교의 초

보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젖입니다(히 5:12).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교회도 새 신자들을 교육할 때 이

여섯가지를 교재로 만들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이 여섯 가지를 그냥 지

나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기독교 교리의

초보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기독교의 초보, 즉

첫걸음이 회개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이 아니라 회개

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절대 회개를 간과하지 말아

야 합니다. 다음은 믿음 즉 행함을 낳는 산 믿음입니

다. 그 다음은 세례들, 즉 복수로 되어 있는데 물세례

와 성령 세례입니다. 물세례를 받을 뿐 아니라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입니

다. 안수해서 성령과 은사를 받게 하고, 속에 있는 

은사를 활성화 시키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죽은자의 부활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과 부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축복, 축복 하면서 복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부활

에 관심을 가지고 항상 깨어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입니

다. 단순히 버림받지 않고 들림만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충성하며 바울처럼 위에서 부르신 부

름의 상을 좇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 도의 초

보이며 바로 젖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이것을 꾸준히 먹여야 합니

다. 그래야 성도들의 영혼이 자랍니다. 그런데 목회

자들이 젖을 잘 물리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강조하

지 않고 강해 설교만 하고 아기를 키우려고 합니다. 

제자 훈련만 하면서 아기를 키우려고 합니다. 얼마

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아기는 밥을 먹인다고 자라

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는 강해 설교를 한다고 크는

게 아닙니다. 아기에게는 젖을 먹여야 됩니다. 즉 

회개하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는 믿음을 갖게 만들어야 됩니다. 물세례

를 받게 할 뿐 아니라, 성령 세례를 받게 해야 합니

다. 땅의 것이 아니라 부활을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오시면 

들림 받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해야 합

다. 그리고 심판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즉 하

에 상급을 쌓는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이 곧 젖입니다. 이런 걸 먹여야 아이가 자랍

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신령한 

젖을 충실하게 먹이지 않습니다. 회개하라는 얘기도 

안 하고, 믿음도 주로 사변적인 믿음이나 말하고 행

함 있는 산 믿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세례도 물세

나 주고 성령세례는 터부시하고, 안수 같은 것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안수를 통해서 성령 세례를 받

게 하고, 은사를 활성화시키고, 병을 고치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곧 젖을 먹이는 

것 입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꼭 학교에 가서 배우

면서만 자랍니까?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자연을 체험

하면서도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성경 공부

만 하면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세례 받고, 

방언하고, 은사도 체험하고, 병 고침과 기적도 체험

하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것을 젖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편, 이 말씀에 의하면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 즉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종말론

까지도 젖에 해당함을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것은 밥이 아니라 젖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세상에? 요한계시록이나 

종말론까지 젖이라면 밥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밥이 무엇이냐고요? 밥 존스가 밥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밥 존스 목사님처럼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것, 그것이 밥입니다.


   요일 2:12-13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

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

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

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나리."


   여기 장성한 자인 아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장선한 자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압니까?

그것은 교제를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동행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서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장성한 사람들은 앞에

서 소개한 여섯 가지 젖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이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이런 밥과 고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

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히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처럼 장성한 자가 즐기는 영의 양식인 밥과 

고기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는 것입니다. 즉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마음, 그리

고 그분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고 본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닮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 모세

나 스데반처럼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먹어야 할 밥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기독교 교리의 초보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

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 

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이 새 신자에게 가르쳐

야할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 6가지를 꼽는다면 과연 

이것들을 꼽았겠습니까? 특히 그중 하나로 '안수'를 

꼽았겠습니까? 아마 저를 포함해서 어떤 목사도 그 

여섯 가지 중의 하나로 안수를 꼽지는 않았을 것입

다. 이것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는 시각이 성경과 

마나 거리가 있으며 굴절되어 있는가를 보여 줍니

다. 또한, 이것은 주님이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진리

가 아니라 실제 영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리를 가르치기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사변적인 진리에 끌리지 말고 실제적인 

진리에 관심을 가지시기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학자들이나 교수들은 대개 사변적인 

진리들을 다룹니다. 솔직히 그것은 알아도 그만 몰

라도 그만인 지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많

습니다. 그러나 사도와 선지자들은 대개 실용적인 

진리를 다룹니다. 즉 사람들이 날마다 꼭 먹어야 하

는 빵과 같은 진리들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학자들

의 설교나 책보다 사도와 선지자들의 설교와 책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영적으로 배부름을 얻고 

자라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안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봅시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안수'의 교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

니다. 그러므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안수의 중요성

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어느 정도는 안수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임명되

는 자에게 손을 얹어 사역으로 성별되게 하는 것

입니다.


   행 13:2-3 "주를 섬겨 금식하 때에 성령이 이르

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이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

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러나 안수의 교리는 수많은 교단에서 믿듯이 

사역자 임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안수의 한 가지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수의 기능 혹은 용도는 무엇일까요?



   (1) 안수는 축복하며 기도하는 데 사용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48장).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막 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

시고 축복하시니라."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렇게 합니다.

즉 축복하기 위해 안수합니다. 



   (2) 안수는 영의 이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 

하였음으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도자 양육의 효과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의 이전에 달려 있다고 본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

보면 영의 이전에 관한 실례로 가득하다... 안수

는 영의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방법 중의 

나이다."



   (3) 안수는 성령 세례를 받게 하는 방법 중 하나

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은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안수는 성령 세례를 받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4) 안수는 은사를 접목시킵니다.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처럼 안수를 통해, 특히 안수하며 예언할 때

은사의 접목이 일어납니다.




   (5) 안수는 은사를 활성화시킵니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합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안수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이 성령의 

은사를 활성화시킵니다.



   (6) 안수는 특히 치유를 위해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안수의 가장 흔한 용도는 치유입니다.

예수님은 아픈 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안수하셨습니다.

    

   막 6:5 "거기서는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 실 뿐이었고"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않을 때 안수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안수를 하고 기도하면 성도들이 더 많이 기대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사용하십니다. 예수

님은 친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담대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음으로 주님께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이 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수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여섯 가지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여섯 가지 교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순히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성경적인 교회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행해야 진짜 성경적인 교회 입니

 즉 성경대로 회개하고, 성경대로 믿고 순종하고,

성경대로 성령 세례 받고 방언 하고, 성경대로 안수

하며 예언하고 병 고치고, 성경대로 첫째 부활에 참

쳬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고, 성경대로 심판을 준비

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만, 전통적인 교회가 

있고 성령 운동하는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성경적인 교회, 바꾸어 말해서 종교적인 교회가 

있고, 성경적인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 운동하

지 않는 교회는 모두 비성경적인 교회입니다. 성경

적인 교회는 성령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면 성령 세례를 포함하는 '세례들'과 '안수'가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

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의 3분의 1이 성령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운동은 모든

회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성령 운동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

니다. 그것을 하고 안하고는 일개 목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계획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라 할지

라도 목사가 "아, 우린 성령 운동 안 해. 우리는 

영성 운동 안 해."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런 권한이 어디에서 옵니까? 어느 목사에게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 시대는 성령 시대 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 운동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 세례

를 포함한 '세례들'과 성령 사역의 수단 중 하나인 

'안수'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요 진리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본에 속하는 것입니다그러므

 성령 운동을 하지 않는 교회는 기본이 안 된 교

회 입니다. 또는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교회들을 모델 교회라고 부르

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운동을 하지 않는 교회는 

진짜 모델 교회가 아닙니다. 그건 다 사람이 만들어 

낸 모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교회는 앵무새

처럼 입으로만 말씀말씀 하지 말고 실제로 성경으

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

터 회복하고,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처럼 성령

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교회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