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사역이란 하나님이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03






행 31: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막 느껴져야 사랑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살아온 것을 돌이켜 보십시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한다, 사랑한다." 계시를 줘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인내하고 오래참으셨습니까?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우리에 대해서 참을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지만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참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하고 참으셨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발전이 얼마나 더딥니까? 발전이 얼마나 더디고 뒷걸음칠 때가 


얼마나 많고 사람이 성질 하나 버리는 데도 10년, 20년, 30년 걸립니다.


빨리 버리는 사람은 빨리 버리지만 한 가지를 고치는 데 몇십 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동일한 것을 나타내 보여야 됩니다.


오래 참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언 사역이 일어나면서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것 중의 한 가지는 예언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이렇다. 이 사람은 됐고 저 사람은 못쓰고,


이 사람은 영적으로 좋고 저 사람은 영적으로 나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고 세워 줘야 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냥 무슨 물건들의 품질을 검사하는 것처럼 예언의 은사로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이렇다.' 하는 것이 우리 예언사역자들의


 속성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번 경고했습니다.


"참소하는 영들을 조심하세요.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물론 성경에도 징계가 있고 교회에서 징계를 해야 될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감정이 아닌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그 영혼들이 회개할 것을 기대하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 한사람, 한사람들을 더 세워 주고


변화시켜 주기 위해서 사역자들을 세운것입니다. 


사역자들이 심판자도  아닌데 주제넘게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이 사람은 이렇다.' 저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언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 됩니다. 


지금은 제가 그런 얘기를 안 하지만 변 전도사님과 울산의 


예언 사역 팀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얼굴 표정을 고쳐라. 표정, 말투, 태도, 거기서 사랑이 드러나야 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드러나야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고 권위와 카리스마만 드러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람들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얼굴 표정과 말투와 몸짓과 행동에서 그런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카리스마는 필요한 것이지만, 사랑이 없는 카리스마는 교만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만과 건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말 성도들을 사랑하는게 나타나야 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속에서 최고의 사람,


거룩한 사람, 정결한 사람 몇 사람만 뽑고 나머지는 버리시려고 오셨습니까?


그게 아니 잖아요? 예언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설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성도들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예 악하고 반역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그들을 사랑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회복시켜 주길 원해야 합니다. 


그게 나타나야 합니다. 


이렇게 분별하고 저렇게 분별하고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이러면 안 됩니다.


일꾼을 세우려고 하면 늘 예언 사역팀이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안되고


저 사람은 저거 때문에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점을 봐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쓰면 좋겠고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쓰면 좋겠다."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지, 쓸 만한 사람과 엘리트들만 골라서 그 사람들만 품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흠이 많습니까? 다른 제자들도 어리숙하고 흠이 많았지만


가능성을 보시고 품으시고 용서하시고 키우셔서 나중에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놓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좋습니다.'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누구나 다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부족이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얘기해야 됩니다. 부족을 얘기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의 부족을 얘기하고 어떤 사람의 잘못을 얘기 하면 안됩니다.


그런 분별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 사람에게 교회에게 해가 되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얘기해야 됩니다. 


그런 것은 교회에서 회개를 촉구해야 되고, 단호한 입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필요하면 공의도 보여 줘야 됩니다. 그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 자체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참소하는 자인 사탄과 손을 잡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도대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영성은 설교, 예언, 신유 등 사역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얼굴에 드러납니다.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내가 찬송하리로다."


진짜 은혜를 받으면 얼굴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주의 얼굴을 보니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 


주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형상" 여기서 형상은


우리의 영이 변하는 것이지만 일단 우리 얼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 변화되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영성은 얼굴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영성은 음색에 드러나는 겁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의 톤과 색이 있습니다.


그 음색에 영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영성이라는 건 그 사람이 평소에


걸어 다니거나 인사하거나 말하는 것에 드러납니다. 


얼마나 고개를 숙이느냐 이런 것 말고 몸짓이 있습니다. 


그런 몸짓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성은 얼굴에 나타나고 음색과 


목소리의 톤에 나타나고 몸짓에 나타납니다.


그게 바뀌어야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얼굴이 바뀌어야 되고 음색이 바뀌고 목소리 톤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리고 몸짓이 바뀌어야 됩니다. 몸짓과 동작들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려면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이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 속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올 때 얼굴이 바뀌고 몸짓이 바귀고 음색이 바뀝니다.


그게 되어야 됩니다. 그게 되어야 사람들의 거부감을 최대로 없앨 수 있습니다.


사람은 괜히 그 사람 얼굴만 보고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설교자들이 강대상에 서 있으면 괜히 그 사람 얼굴만 보아도 마음에


거부감이 듭니다. 왜냐하면 주님 형상이 아니고 그 속에 주님의 마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빽빽 거리고 설교하니까, 


설교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성도들이 판단하려고 안 해도 즉각 저절로 뭔가 영으로 감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가 듣기 싫은 겁니다.


설교가 듣기 싫고 들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얼굴이 바뀌어야 되고 음색이 바뀌어야 되고 몸짓들이 


바뀌어야 됩니다. 영성은 거기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 모두가 주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어야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어야 됩니다. 


설교할 때에도 예언할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이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역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 제 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