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우상화라고요? 글세요 뭘 잘 모르시는군요.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04





저는 영적 권위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세계적인 분들의 예언을 왜 올리느냐? 이유 중에 하나는 


영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영적 권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그러느냐? 


고린도후서 10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영적 권위가 세워지는 것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영적 권위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역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고, 또 사역은 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역은 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언해도 맞는 예언이냐


틀린 예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권위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는 영적 권위에 따라서 그 예언의 파괴력이 달라집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서면 성도들의 마음이 완전히 열려서 무슨 말을 


하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 있다. 그것을 자기가 느낀다'고 합니다.


다른 목사님이 서면 안 그러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서면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설교를 하든지 그냥 아멘 하고 받아들이고 따를 그럴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 목사님이 서는 것과 다른 목사님이 


서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적 권위는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설교 잘한다. 못 한다. 이런 차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권위로 사역해야 됩니다. 실제 사역은 영적 권위로 되는 것입니다.


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만 명이 모이면 얼마나 교회가 시끄럽겠습니까?


영적 권위로 만 명을 압도할 수 있어야 진짜 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영적 권위로 십만 명을 압도할 수 있어야 진짜 십만 명 모이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만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권위가 없이 어떻게 군대가 되겠습니까? 오합지졸이 되고 맙니다. 


교회 성장은 그 목회자에게 임해 있는 권위만큼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에게 100만 명을 압도할 수 있는 영적 권위가 주어져 있으면


100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권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목회자가 카리스마가 있고, 영적 권위가 분명하게 


그 교회 안에서 세워지면 어리석게도 이것을 우상화라고 공격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영적으로 어두운 것입니다. 어쩌자는 것입니까?


목회자가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나서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보이면 


도대체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나갑니까? 사람들이 각자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하게 하자는 것입니까? 사사기에 나오는 그런 어두웠던 시대처럼요.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지 않고, 주님을 분명하게 높이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면서 목회자의 영적 권위가 드러나는 것은 


우상화도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우상화니 뭐니 허튼소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너무 혼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모든 반역은 혼에서 나옵니다.


모든 영적인 교회의 혼란은 혼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부터 혼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마귀하고 대화한 것이 영으로 대화한 것입니까? 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영에서 나옵니다. 혼에서 나온 것은 그럴싸합니다.


논리적이고 이상적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마귀의 혼적인 소리에 속아 넘어가서


잘못된 말을 하고 잘못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들이 사랑으로 겸손히 섬길 것을 


요구하시지만 동시에 교회가 시장터가 아니라 군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인 권위가 분명하게 세워지길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0장 8절에 보면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세가 무슨 일을 합니까?


세웁니다. 바꿔 말하면 권세가 없으면 세울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는 절대로 설교만 가지고 영혼들을 세울 수 없습니다. 


절대로 은사만 가지고, 심방만 가지고, 상담만 가지고 세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우려면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설교가 통하고, 그래야 모든 사역이 통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사람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권세를 사람들이 병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세' 하게 되면 사람들을 휘두르고, 자기 맘대로 좌지우지하는 


이런 독재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들이 교회 안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가리켜 우상화라는 엉뚱한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왜 권세를 인간적인 안목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슨 목회자가 정차가입니까? 권력 잡으려고 합니까? 


왜 그런 쪽으로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성도들을 세우려고 주신 것입니다.


"이 권세는 사람을 세우려고 주신 것이니 내가 이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랑해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지나치게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을 세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그 권세를 바울이 자랑함으로 성도들이 그 권세를 


인정하게 되고 그 권세 아래 들어와야 바울이 사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산책을 하면서 성경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버니게 앞에 끌려갔습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 섰습니다.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말하는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답답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상대방이 그냥 학문이 많아서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그냥 광신적인 종교지도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도 통하지를 않습니다. "바울아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


"아그립바 왕이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고 정신 차라고 참된 말을 하나이다."


아무리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낸 그대로라 할지라도,


그런 영적 권위와 기름부음을 그대로 가지고 서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그 사람에게 있는 권세의 위임된 부분을 보지 못하면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말과 사역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성도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저는 권세 아래 들어오지 않는 어떤 사람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이라 할지라도 권세 아래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은


제 마음에서 선을 긋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 나갈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아무 때나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제든지 변하고, 바뀔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권세 아래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 상해도 다르게 반응합니다. 


저의 부족한 것을 봐도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역을 위해서 권세를 위임할 때, 저는 권세 아래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만 


권세를 위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입니다.


영적인 권세를 어떻게 받습니까? 다윗 왕이 사울에게 위임되어 있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권세가 다윗에게


위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저는 모든 목회자든 성도든 저의 권세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권세를 줍니다.


그 이상의 권세를 절대로 위임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라고 무조건 권세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것하고 권세가 위임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성도라고 무조건 권세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장로님이라고 무조건 권세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권사님이라고 무조건 권세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예언 사역자라고 권세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역을 키우는 것입니다. 


저는 권세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권세를 줍니다.


직분자를 세울 때도 제가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권세 아래 들어왔나? 그 문제에게 걸리면 다른 모든 것은


백지로 돌려버립니다. 그것이 교회가 평안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로 연합하고,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권세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그 사람을 높이고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은사도 많이 받고 활동도 많이 하고 이것이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그 사람의 체험이고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권세 아래 들어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안 변합니다. 


권세 아래 들어 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안 깨집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깊은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안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권세를 주어서 쓸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영적인 용사가 아닌데 어떻게 용사로 쓸 수 있습니까?


영적인 장군이 아닌데 어떻게 장군으로 쓸 수 있습니까? 


권세 아래 들어오는 만큼만 저는 권세를 위임합니다.


교역자들을 사용할 때도 제가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인 권위 아래 들어와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저는 아무도 안 씁니다.


우리 교회는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시장 바닥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군대로 부름 받은 교회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이지만


여기는 영적인 질서가 분명한 교회입니다.


고후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로 파하려 주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 주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라히라."





-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 제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