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01






겔 1:1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하늘이 열린다." 너무 좋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늘이 열리고


 되었습니다. 또, 초대 교회도 하늘이 열리고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행 2:2-3).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종말에 대해서 계시를 받았을 때 하늘이 열리고 


그 계시를 받았습니다. 사역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것을 보면, 


너희 하늘이 놋쇠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이 닫힌 사람이 있고 하늘이 열린 사람이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괜히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교회가 괜히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복을 받았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우연히 상황, 정황이 맞아서 부흥되었다는 것은 가치가 없고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늘이 열리므로 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늘의 보고를 열어서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말 3:10) 하셨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늘이 열리므로 임합니다.


또, 진정한 교회 부흥도 하늘이 열리므로 임합니다. 


하늘은 안 열리는데 목사가 지적으로 잘 교육해서, 또 장소나 시스템으로


좋은 시설과 친교를 통해 부흥되는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하늘이 닫힌 상태에서 사람끼리만 좋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늘이 열려 있어야 영혼들이 살아나고 영혼들이 만족을 얻고 새로워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늘을 여는 열쇠는 회개와 정결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귀가 둔해서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희 죄악이 


하나님과 너희 사이를 막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닫힌 하늘이며 


이것이 하늘 문을 닫히게 하는 원인입니다.


하늘이 열린 삶은 어떤 삶입니까? 목회를 해도 하늘이 열린 가운데 해야 


성장이 아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놀랍게 성장합니다.


사업이나 세상일도 하늘이 열린 가운데 해야 재물을 얻되 마음에 근심이 없고,


평강과 기쁨을 겸하여 재물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을 막고 있는 것은 죄입니다. 회개할 때 하늘이 열립니다.


초대 교회가 시작될 때 회개를 통해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너희가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람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라고 했습니다.


원리는 바로 회개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면 하늘이 열리게 됩니다. 이것이 복의 비결이기도 하지만


이것 자체가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열린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하늘이 열리는 것이 요한처럼 


꼭 입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이 열리면 천국이 내려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늘이 열리면 모든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나 하늘이 열리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천국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


내려옵니다. 천국을 구경하는 것이 좋은가요? 경험하는 것이 좋은가요?


당연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입신을 해도 천국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천국을 보는 것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회개하고 정결케 되 주님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거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마음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것, 이런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린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정결하고 주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항상 요셉과 함께 하셔서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도 육적으로 읽으면


하나님이 함께 했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저 '형통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그를 향해 열려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여기서는 형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셉의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린 사람의 삶입니다.


이것을 맛보면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빠져버리면 돈이나 명예, 권세, 성공, 교회의 부흥, 


무엇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이 있으면 성공하지 않아도 일이 막혀도 돈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있어도 폭행을 당해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즐겁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하늘이 열려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꿈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두 사람이 의합치 않고 어떻게 동행하겠느냐?"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잠시 동행할 수 있지만 기도 후에 떠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회개하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회개하고 정결해야 됩니다. 


다른 때보다 지난주 예배가 은혜로웠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제가 몸부림쳤는데 그로 인해 조금 맛보았는데 예배가 달라진 것입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가서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조금만 주님과 동행해도 예배가 이렇게 달라지는데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


내 삶에 대해서 깊이 회개했습니다.


사역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또한, 일이나 공부하는 것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성패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원고를 갖고 설교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부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사람이 일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일함으로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노예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그래도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감옥에서 죄수 생활하는 중에도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나 어떤 어려움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무조건 형통합니다.


언제가 제일 좋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할 때입니다. 


돈이 있으면 좋은 것은 어떤 부분일 뿐 내 존재와 내 영을 충족하는 참 만족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내 전 존재를 만족시킵니다. 


세상은 나의 부분적인 것만 만족시킵니다. 나아가 하나님 대신에 세상 것을 


잘못 추구하면 세상의 부분적인 만족에다 심령의 곤고함, 고통함이 더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참된 만족이며 참된 기쁨이며 이것이 천국입니다. 


생명나무가 있고 천사가 있고, 황금집이 있어야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천국이 있지만 천국이라고 할 때에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안에 느껴지는 의, 평강, 희락입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 제 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