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긴급 수혈] 비용 (1) 우리의 마음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46






19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찰스 하지입니다.


그는 프린스톤신학대학에서 채플을 인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구원의 방법과 조건에 두 가지 표현법이 있는데,


하나는 영생을 얻는 것을 쉬운 것으로 묘사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어려운


것으로 묘사한다."



실제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이 말씀을 생각하면


영생 얻는 것이 아주 쉬워 보입니다.


반면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면 왜 구원을 놓고 표현이 이렇게 다를까요?


그것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구원의 근거(공로)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으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것을 쉬운 것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구원의 조건 측면에서 보면 구원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것을 어려운 것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둘은 서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둘 다 100% 진리입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그림이 다르지만 하나의 동전인 것처럼 이 둘이 하나가 되어야


성경적인 온전한 구원론이 됩니다. 그러므로 둘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완벽하게 조화시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이라는 동전의 뒷면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앞면은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 공로, 오직 믿음 등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뒷면은 회개, 예수님의 주 되심, 제자의 조건 등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구원에는 두 가지 비용이 요구되는데, 앞면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지불하신 예수님의 피 값입니다. 이것은 공로와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뒷면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지불해야 할 


제자의 조건이라는 비용입니다.


이것은 공로와 무관하고 우리의 의무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 예수님의 주 되심, 제자의 조건을 아무리 강조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율법의 행위 외에 이런 주제들을 상대로


은혜 논쟁을 벌이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설교자들이 예수님이 지불하신 대가만을 강조하고


인간이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명목상의 신자가 급증하고 교회가 세속화되고 나약하게 된 것입니다.


네비게이토선교회의 찰스 프라이스 박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탁월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얻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이 말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의미에서만 진리입니다.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고


노력으로 획득할 수도 없으며, 우리의 선행을 근거로 흥정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보면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이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값없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도 영생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값없이 거저 얻는다는 것은 구원이 '값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원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닙니다. 구원에는 치러야 할 값이 


있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33)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값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지하게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값을 지불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권리를


갖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길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여러분 옳은 말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가 지불해야할 대가를 알아야 하며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마땅히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학원에 다니는 수강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불해야할 비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함께 영적인 등록금의 내역을 알아보겠습니다.





(1) 우리의 마음



눅 14: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여기서 미워하라는 것은 실제로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에 이삭이 죽도록 내버려두셨을 것입니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내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개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복음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에는 


믿음뿐 아니라 사랑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참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쓴 이유입니다.



벧전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야고보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하나님) 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약 2:5)


라고 칭했습니다. 


옳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은 밥 존스 목사님의 "사랑하는 법을 배우셨나요?" 라는 간증에 잘 나타납니다.


1975년 8월 밥 존스 목사님은 사탄의 공격을 받고 동맥파열증세를 일으켰습니다.


입과 코로 피를 쏟으며 병원에 옮겨진 그는 곧 사망했습니다. 


죽은 후 그는 그 당시에 죽은 98%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우상으로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천국 문 앞으로 인도 되었는데 주님은 죽어서 온 사람들에게 


"사랑하 법을 배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밥 존스 목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 밥 존스 목사님이 이 간증을 제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천국에 간 2%는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편, 비용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성에 대한 경고로 이어집니다.



눅 14:26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은 우리을 위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주님을 위해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종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묘사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롬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안 되어 있다면 그는 목사가 아닙니다.


이것이 안 되어 있다면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긴급수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