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견인의 교리에 근거하여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십시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7. 21:54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4) 견인의 교리에 근거하여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십시오!

 

 

 

흔히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곤 합니다.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저마다 사는 목적이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달려가는 영적인 푯대는 같아야

합니다. 

 

푯대는 우리 삶에 방향키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방향이 다르면 출발점이 같아도 점점 더 멀어지다가

완전히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르게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고전 9:26)

 

 

그럼 바울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음 절인27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처럼 바울의 방향은 궁극적인 구원이었습니다.바울은

작금의 수많은 목사들과 신자들처럼 방향을잘못 잡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바르게 잡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이것은빌립보서

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

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7-14)

 

 

제랄드 호돈은 바울이 말한 '부름의 상'에 대해

이렇게 썼씁니다.

 

 

"바울에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가 그의 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아는 것이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던 만남 이후로 그가 

획득하려고 노력한 상이었다."

 

 

아주 멋진 해석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또, 로버트 라이트너는 '부름의 상'에 대해 이렇게썼습니다.

 

 

"그는 상을 말하면서 마음 속에 다시 헬라 경기들을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이 경기들에서 승자는 자기상을

받으러 심판이 앉아 있는 자리로 부름을 받는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구원, 혹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자리'에서 상 받음(고후 5:10)을

말했을 것이다."

 

 

이처럼 '부름의 상'은 상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뜻합니다.'상'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과 상급을 포함하기는하나

그 근본적인 그리고 일차적인 의미는 궁극적인구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상급이 우리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버림받지 않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인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김세윤 교수님은 빌립보서를 강해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다하여 도달하는 푯대는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받는 지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올림픽 경기에서 본부석에 앉아 있는 왕이

승리자에게'다소 출신, 누구누구의 아들, 바울은

위로 올라와 상을 받으라'고 부르는 시상식 모습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 때 이와 같이 자신을 

위로 불러 상(완성된 구원)을 주실 것을 바라면서

그 지점까지 자신의 믿음의 경주(성화와 사도직의

수행)를 일편단심으로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권영경 교수님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구원은 '믿음'에 근거한 우리 삶의 '최종 목표'다

(빌 1:9)...바울은 이를 '달리기' 이미지로 묘사한다.

우리는 구원의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얻기 위해 '푯대'(결승점)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빌 3:12).이 목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 곧 우리 몸의부활이다(빌 3:11)."

 

 

그리고 호크마 종합주석에도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위해 심판관 앞에 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것에서 연유된 표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실제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고전 12:6, 7:20,

엡 1:18,4:1, 4, 살후 1:11)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완성을 시사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전에 저는 부름의

상이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한다는 근거로같은 장 10-11절

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런데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이 구절에 나오는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라는 표현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온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구원이 완성되기때문에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해야 할'필요성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근거로 웨슬리나 피니가 주장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가능하지 않다고단정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바와 같이, 바울의 목표는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궁극적인구원을 위해 달음질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바울이 추구한 구원을"큰 구원"

(히 2:3)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원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큰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모잠비크, 미얀마 같은 후진국

에서사는 것과 미국, 독일, 스위스 같은 선진국에서사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납니까?

의식주는 물론 문화생활과 문명의 해택을 누리는

것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런데 

천국은 선진국과 비교가 불가능한 선진국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을 받아 천국에가면 모든 것이 보장됩니다. 

풍족한 의식주가 영원히 무료입니다. 또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아프지도 않고,

슬픈 일도 없고, 재난이나 사고도 없습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악인들도 없고

영원히 주님과 천사들로 더불어 완전한 행복을누립니다.
이것이 모두 구원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엄청나게 큰 구원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구원을 목표로 삼고 달려갔습니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이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올바른 견인의 교리는 우리에게 바른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지금 방향 수정을 하고, 바울처럼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달려가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마지막 날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