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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 예수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6. 24. 22:48




생명의 떡 예수(요 6:1-71)




두 가지 표적(요 6:1-24)



요한복음 6장의 두 가지 기적 이야기(요 6:1-24)를 읽은 독자는 마치 공관복음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에

흔치 않은 공통된 내용을 다루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급식 이적은 사복음서 모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요 6:1-13 ; 마 14:13-21 ; 막 6:32-44 ; 눅 9:10-17)

요한복음의 자료와 각 공관복음의 문학적 관계 등에 대해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연구해왔다. 그 자료와 문학적 자료가 어떠하든지 간에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급식 이적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있다(요 6:14-15).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이 기적을 표적이라고 하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

여기게 된다(신 18:15 ; 요 1:21 참조). 하지만 예수는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예수의 표적에 의한 인식은 부적절한 인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요한

은 그의 전형적인 서술 방식대로 급식 이적을 표적이라고 명명하고 그 일에 대한

반응을 기록했다. 


이어지는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기적(요 6:16-24) 또한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것인데

(마 14:22-33 ; 막 6:45-52) 이 기적 사화는 공관복음 병행 사화와 매우 유사하다.

여기에는 요한복음적인 특징은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예수가 물 위를 걸어

오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내니"라고 한 말은 다른 공관복음과 유사하지만 여기에

서는 다른 공관복음 본문처럼 "나는 나다"라는 신적 자기 계시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출 3:14 ; 사 41:4 참조)




표적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충돌(요 6:25-59)



급식 이적과 물 위를 걷는 이적 자체보다도 이 이적에 이어지는 예수와 유대인들

간의 대화와 충돌을 기록한 부분에 요한 신학의 독특성이 나타나 있다(요 6:25-

59).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가 병자를 고친 이적은 안식일 논쟁으로, 안식을 논쟁

은 다시 기독론 논쟁으로 이어지듯이(요 6:25-31), 이 논쟁은 결국 예수의 본질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된다(요 6:32-59).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던 떡과 만나가 하나님의 역사의 표적이었던 것처럼, 예수는 자신

의 가르침을 증명할 표적이 바로 자신이 "생명(영생)의 떡" 임을 천명했다(요 6:35,

48, 51). 이 말을 하면서 예수는 "나는... 이다"라는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신적 본질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떡은 세상에 생명(영생)을 주는 떡이다. 곧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영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죽었듯이 이 떡을 먹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나아가,

맛나를 먹은 사람들은 결국 죽었지만, 생명의 떡인 예수를 먹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 예수는 생명의 떡과 관계된 자신의 본질을 말할 때 구약과의 연결점을 말하면

서도, 동시에 불연속성이 있음을 암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새로운 계시임을

천명한 것이다. 


또 예수는 자신이 생명의 떡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 위 "살과 피"라고

소개한다. 이 부분은 성만찬 제정 본문이 없는 요한복음에서 성만찬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본문으로 널리 인식되어 왔다(요 6:51-59). 이 본문이 성만찬에 대한 암시

든지 그렇지 않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통해 이제 새 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와

의 관계에 의하지 않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사람들의 생명적 

관계를 떡이라는 메타포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살과 피"라는 또 다른 메타포로 연결

했다. 이것의 요점은 떡이든 "살과 피"든, 각각은 영생(생명)을 얻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와 생명적 연합 없이는 영생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요 6:60 -71)




위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랐던 여러 제자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말씀은 기존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관과 세계관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군

거리는 자들이 되었다(요 6:61). 결국 예수의 계시는 이 사람들에게 예수를 더 이상 따를

수 없는 걸림돌이 되었고 이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그만 두었다(요 6:66). 이러한

상황에서 열두 제자 그룹에게 "너희도 떠나갈 생각이냐?"고 물었고 이때 베드로는

공관복음에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한 고백(마 16:16)과 비견되는 요한복음판

신앙고백을 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






- 김동수 교수님의 [요한신학 렌즈로 본 요한복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