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마헤쉬 챠브다 글

예수님을 향한 열정

놀라운 주의 사랑 2017. 2. 17. 23:46


예수님을 향한 열정


열정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 인류가 이룩한 과학과 의학의 위대한 업적들과

사회개혁, 제도개혁 등의 획기적인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의 필사적인 욕구 

혹은 열정적 헌신의 산물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도 국회의원이자 헌신적인 그리스도

인이었던 윌리엄 월버포스(William Wiberforce)라는 한 남자의 지치지 않는

인내와 열정적인 노력 덕택이었다. 


1950년 미국의 조나스 소오크(Jonas Salk) 박사는 열정을 갖고 끈기 있게 

연구한 끝에 소아마비에 대항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그 덕택에 현대의 가장 두려운 질병의 하나였던 소아마비를 근절할 수 있게

되었다.


열정은 영적인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아는 지식과

은총 속에서 성장하여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능력을 전하는 능력의 사역자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예수님을 향한 열정과 예수님의 임재를 향한 열정을 지녀야

함은 물론 우리 각자를 위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여, 더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저를 채워주소서. 저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빛나게 하옵소서"라고 청해야 한다.



성령세례와 그것에 동반되는 표시로서 방언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성령세례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접속시키시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이니라"(고후 3:17,18).



여기서 바울이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일을 의식하고 "수건을 벗은 얼굴"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분명하다. 모세가 하나님 임재의 영광 속에 들어갔다가

내려왔을 때에 그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났고, 백성들이 이를 심히

두려워하여 수건으로 가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수건을 

벗은 얼굴로 하나님의 영광을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 계신다.




둘째, 성령의 언어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 21절).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보조를 맞출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 16:13-15).





셋째, 성령의 언어는 우리 자신과 가족들에게 영적 덮개와 보호막을 씌운다.



자연계에 우리를 해치는 것들이 가득하듯, 영적 세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기름부음이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보호'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실제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자비로 가득

하시다. 때로는 환경이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때야말로

하나님을 더욱 단단히 붙잡을 때이며, 하나님께 온통 집중할 때이며, 우리의

기도의 언어, 즉 성령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접속할 때이며,

하나님의 주파수에 우리 파장을 맞출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부음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 까닭은 우리가 인간이며, 죄와 연약함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이 기운을 북돋아주시며, 하나님의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하나님은 구약 스가랴서 4장 6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선언하셨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떤 곤경과 역경과 시련에 처하든 성령은 우리를

축복하고 채워 영광과 기름부음의 영역으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 우리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성령이 새로운 통찰력과 계시를 주어 예수님을 좀 더 명확하게,

좀 더 인격적으로 바라보게 하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만 열정과 배고픔만이 

필요하다.



- 마헤쉬 챠브다 목사님의 [방언체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