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자의식 대수술!] (3) 양심의 절대적인 권위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29




(3) 양심의 절대적인 권위



모든 권위 위에 있는 세 가지 권위 중 하나님이 으뜸이고,


성경은 그 다음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 가장 높은 권위는 양심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5)



양심은 하나님 법(말씀)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준수하듯 양심에 순복해야 합니다.



양심은 심지어 나라의 법 위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의 법보다 양심을 우선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이처럼 양심이 일종의 법이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가 되듯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는 것 역시 죄가 된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로마서 14:22-23)



20절에 보면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양심의 거리낌과 관련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양심에 꺼림칙한 의심스러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많은 모호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줍니다.


여러분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온전히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양심의 거리낌이 조금도 없이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뿐 아니라 양심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의문스러운 것이 있으면 양심에 거리껴지는가 


아닌가를 시금석으로 들이대 보십시오.


그러면 답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양심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 종류의 양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상 문화에 영향을 받은 불신자들의 양심은 더럽습니다.


그들의 양심은 불완전합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디도서 1:15)



그래서 심지어 가증스러운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틀 전 어이없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교황, 무신론자에게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



<앵커 멘트>


취임 후 파격행보를 이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 파격적인 


메세지를 내놨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양심을 지키면 신이 자비를 베풀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도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프란치스코 교황의 취임미사엔 종파의 벽을 넘어 


다양한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교황명은 가난한 이들의 벗인 프란치스코, 


취임 이후 행보는 이름을 실천하는 길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한 신문이 보낸 무신론자의 질문에도


전임자들과는 다른 답변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는가?'라는 질문에


'신앙이 없어도 양심에 따르면 된다'고 답한 것입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죄를 짓게 되는 만큼


양심을 따르면 선과 악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선행을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지난 5월 미사와 맥락이 같습니다...


KBS 뉴스 김도영입니다."



불신자들은 그 양심이 더럽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양심대로 산다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단자가 교황이라니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불신자들의 더러운 양심과 달리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들의 양심은 깨끗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 9:14)



이 구절을 다른 번역본들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공동번역)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새 번역)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믿는 자들의 양심이


깨끗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성구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21-22)



이 구절을 다른 번역본들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개혁한글)



"우리가 이미 마음이 피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이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제부터는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현대인의 성경)



이처럼 믿는 자는 예수님의 피로 그 양심이 깨끗해 졌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인도를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로마서 13:1,5)



이 구절에 살짝 암시가 되어 있듯이, 


우리는 권세자들의 명령이 양심에 반하는 것이 


아닐 경우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출애굽기에 출현하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이에 대한 좋은 모범입니다.


당시 애굽 왕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장악하고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혹독한 노동을 강요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애굽기 1:13-14)



애굽 왕은 고된 노역으로도 이스라엘을 약하게 할 수 없자


다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애굽기 1:15-17)



이 산파들은 권위를 무시하거나 반항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애굽 왕보다 더 높은 권위를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하나님의 말씀양심의 권위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양심이 허용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 왕이 아니라 양심에게 순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잘 알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불신자들도 선한 사람들은 양심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더욱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1:19)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믿음과 양심은 함께 갑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즉 가짜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디모데전서 3:8-9)



이처럼 깨끗한 양심은 집사들의 자격요건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더욱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저는 수년간 이단 시비로 시달리면서 교계의 수많은 목사들이


지극히 비양심적인 것을 보고 놀라다 못해 참으로 경악했습니다.


한기총이나 교단들에서 활동하는 정치목사들, 이대위위원장과


위원을 하는 목사들 조사한다는 신학대학 교수들, 국민일보와


기독교 방송 그리고 그밖에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는 목사들 중


제가 만나고 경험한 거의 90%가 양심불량이었습니다.


슬프게도 거짓말과 왜곡을 밥 먹듯이 하는 직업적인 


이단사냥꾼들만 비양심적이고 악한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내세우며 그들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대부분 썩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영적이고 거룩해야 할 영성운동을 하는 목사들 중에도


비양심적이고 썩은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이들처럼 되면 안 됩니다.


바울처럼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행 23:1). 


그리고 누구의 명령이든 양심에 저촉되는 것은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사람이 아니라 양심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 여러분에게 모든 권위의 출처이며 모든 권위들 위에 있는


세 가지 권위에 대해서 설명해드렸습니다.


하나님, 성경, 양심 이 세 가지 권위는


왕, 나라, 법, 총회, 당회, 부모, 남편, 직장상사 등 


모든 권위들 위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행사하는 다른  모든 권위의 시금석입니다.


이것들을 들이대면 그 권위가 참된 권위인지 아닌지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누구든 이 세 가지 권위와 상반되는 


명령을 내리면 절대로 따르지 마십시오.


그럴 경우에는 불순종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다니엘의 세 친구와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처럼


용기있는 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용기 있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사람이 아니라 양심에 


순종하는 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자의식 대수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