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2

[주께서 보여주신 선] 자신에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8. 02:34




자신에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


   

   정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1.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바른 의의." 라는 뜻입니다.

정의는 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죄는 바른 것이 아닙니다. 굽은 것입니다.


잠 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

나라라."


잠 11:20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사 59:7-8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사 53:6) 이라는 

말씀대로 인간은 모두 바른 길을 버리고 

죄를 지으므로 그 길이 굽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함으로 자신의 굽은 길을 곧게

해야합니다. 


막 1:1-5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이처럼 회개를 통해 굽은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곧게 한다" 는 것은 실제로

굽은 길을 곧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눅 3:3-6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

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처럼 길을 곧게 한다는 것은 실제로

굽은 길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

이고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정의

로우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이고 예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정의 입니다. 

   그런데 요즘 늘 사랑에 관해 말하면서 

회개, 행함 있는 산 믿음에 대해서 침묵하는

설교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자만 알고 엄위에 관해서 무지할 때 일어나

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혹이며 

영혼들을 위태롭게 합니다. 


미 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설교자는 마땅히 정의감으로 충만해서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설교자가

가져야할 정의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설교자가 마냥 사랑타령만 하면 교회가 병듭

니다. 예를 들어, 애들에게 사랑만 주면 아이를

망칩니다. 책망만 줘도 망치지만 사랑만 줘도

버릇이 없고 망가집니다. 제가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아이들을 지켜본 결과 예쁘고 

귀엽게 생겨서 사랑받는 아이가 있고 못생기고

성격까지 삐딱하여 미움을 받는 아이가 있습니

다. 한 아이는 사랑만 받고 자라고 한 아이는

책망 받고 때로는 맞고 자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문제 있던 아이가 반듯한 아이가 되고 반면에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망가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징계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제자들을

키울 때 칭찬과 격려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막 9:33-34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 오라 하시니라."


   이처럼 때로는 교만한 것을 책망하고 때로는

믿음이 없는 것을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고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바울이 교회

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십시오. 각 교회에

대해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

했습니다. 사랑의 사도라 불린 요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요한은 진짜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랑의 사도들과 달랐습니다.

그가 사랑에 대해서 쓴 요한일서를 보십시오.

그 책은 인자와 엄위에 있어서 고도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사랑이 주제이지만 거듭남에

대한 시금석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요한일서

입니다. 더구나 그는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들을 읽어 보십시오. 항상 인자와 

엄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장점이

있으면 칭찬합니다. 그런데 장점이 없으면

칭찬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장점이

없어서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칭찬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망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책망합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사랑의 사도 요한이 보여준

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칭찬과

격려만 하지 말고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회개가 필요한 부분은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사역자와 바른 성도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합니다. 


롬 2:4 "혹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

함을 멸시하느냐?"


   사랑을 강조하는 분들은 이 구절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잠잠히 사랑

해야지 회개하라고 다그치면 안 된다고 주장

합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인자함이 회개로

인도하는 것'과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고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 바울,

사도 요한 등 성경저자들에게는 이 두 가지가

하나였습니다. 때문에 사랑을 강조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터부시하면 그 분들을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즉 세례요한도 잘못된

것이 되고 예수님도 잘못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회개하라고 외쳤기 때문

입니다. (마 3:2, 4:17) 

   그 분들이 사랑이 없어서 그렇게 외쳤겠습

니까?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짧은 생각을 버리고 한쪽으로 치우

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정신'

으로 침묵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

다. 이것이 균형 잡힌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사랑만 강조하는 분들에게서 인자함

을 통해서만 사람을 회개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햇볓정책으로 종북주의자들의 햇볓정책이

바른 것이 아니듯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큰믿음교회를 보십시오. 

우리교회는 인자뿐 아니라 엄위에 속한 말씀

들을 많이 선포합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나 

사역단체보다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이 풍성

하게 맺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랑만 강조

하는 분들은 성경대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 

잘못되었거나 미성숙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예수님과 세례요한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도 미성숙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주께서 보여주신 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