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터] (4) 제자가 되려면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9:08




선생이 되기 전에 먼저 제자가 되십시오.




(4) 제자가 되려면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새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

라.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5:37-38)


   하워드 스나이더가 쓴 [새 포도주는 새 부대

에]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새 부대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누가복음 5장의 가죽부대에 관한 구절에서

예수님을 비판하는 자들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당

신의 제자들은 왜 먹고 마십니까?'하고 질문을

해온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에 대하여 말함으로

써 대답을 시작한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결혼식의 손님들이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이

그들에게서 빼앗길 날이 오리니 그날엔 그들이

금식하리라.' 예수님 자신이 여기서 신랑이었고

그분이 지상에 제자들과 함께 있는 동안 잔치

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

시고 새로운 부대와 새로운 포도주에 관하여

말씀을 계속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참 문제의

소재가 무엇인가를 아셨다. 그분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제기한 질문의 이면이 무엇인가를

아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모든 전통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화를 내고 있었다. 마태

복음 15장 2절에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

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제기

했을 때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

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

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말씀이 열쇠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리라.' 유대교는 그리스도 

복음의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었다. 기독교 

신앙은 성장하면서 유대교적 낡은 부대를 터뜨

릴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된 셈이다. 교회

는 옛 유대적 형태를 벗어버리고 전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글이 잘 보여주듯이 결국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통입니다. 그런데 

통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존 아반지

니 박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습니

다.


   "두 가지 종류의 전통 

   종교적인 전통은 두가지 기본적인 범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의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

면서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 전통''전통적 

해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의식적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

을 무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전통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전통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통적 해석들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의 적들입니다. 그것들은 복음

이라는 향유 속으로 날아들어 간 파리와도 같

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성경 이해 속에 전통이

라는 썩은 효모를 교묘하게 짜 넣었습니다. 

모든 교단은 그 문제에 한몫씩 기여를 하였습

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교리를 조직하기 위

해 성경을 이용할 때마다 잘못된 해석들을

점점 더 추가합니다."


   그 후 그는 신랄한 지적과 함께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알면서도 그 말씀에 거슬러서 행동

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자주 목격합니다. 그것

이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하찮은 이

유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기들의 사례비나 퇴직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비성경적인 교회 기관에 눌러

있는 목사님들을 보아왔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례비

나 은급이 취소당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중요한 직위라고 여기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 전반을 가르치지도, 

설교하지도 않는 교회에 계속 머물러있는 사람

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영향력 있는 교회에서 자신들의

목회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들을 선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명예라는 일시적인 특권 

때문에 훌륭한 인물들이 어떻게 눈이 어두워져

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있는지 놀랍습

니다. 인간의 영광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마십시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35) 

   만일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전통적 해석에 붙잡혀 있

다는 생각이 들면 성경을 더 진지하게 연구해 

보십시오. 성경이 당신의 전통적인 해석을 들추

어내면, 그것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전통

적인 해석을 물리쳐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뢰아 성도들처럼 행하

십시오. 당신의 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 확실한지 매일

성경을 탐구하십시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니라.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있는 사람

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므로' (사도행전 17:10-11)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당신은 사람

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가

르치는 훌륭한 목사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점검하고 확인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인 의식과 해석이라

도 비성경적인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이라도

성경적인 것들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새 부대와 

같은 마음입니다. 

   새 부대는 꼭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전환

과 같은 큰 시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지요. 최근에 저는 우리

를 음해한 백석교단이 운영하는 백석대학교에

다니는 신학생으로부터 신학과 교수님들이 

다음과 같은 강의를 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

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볼 때 바울서신에

집중하는데 사실 공관복음부터 먼저 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타락하고 교회

가 부흥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어요.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이고 전도하지 않

아서 그래요. 제대로 복음전하고 전도해봐요.

교회, 금방 부흥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학생이 나에게 한권의 책을

선물해줬어요. 지금은 우리 교단이 아니지만

변승우 목사님이라는 분이 쓰신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책이에요. 처음에는 제목이 

섬뜩해서 방 한 구석에다가 놔뒀는데 6개월인가

지나서 갑자기 이 책의 제목이 계속 눈에 걸리고

생각나기에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봤어요.

그런데 보니까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참된

신자는 믿음에 따르는 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 어느 신실하신 권사님도 이분

의 책을 읽고서 자기가 여태까지 헛 믿었다며 

탄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이 책 꼭 한번 보세요. 

지금 한국 교회는 나와 견해가 맞지 않다고 너무 

아무 사람한테나 분별없이 이단시비를 거는데 

이거 정말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사 강의 시간에 수업을 듣는

후배가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교수님이 종교

개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중이라고,

그래서 개혁신학은 단지 한 번의 개혁으로 마치

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계속 개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최근에 쓴 [종교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책을 여러분 모두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책 제목처럼 종교개혁은 끝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그러므

로 참된 개혁신학은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체입니다. 성경처럼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비성경적인 것은 빼고 성경

적인 것은 더할 수 있어야 진짜 개혁신학입니다.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 하는데 '항의자'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성경적이지 않은 전통과 교리

에 계속해서 항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개신교입니다. 그리고 진짜 정통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종교개혁은 지금도 진행 중

입니다. 진리도 계속해서 회복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또는

카톨릭에서 개식교로 전환될 때처럼 그렇게 극

적인 전환의 시기에만 새부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 술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버리고, 성경적인 진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릭조이너 목사님은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진리를 추구할 때에 우리는 그것에 기꺼이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어떤 진리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은 그들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이나 그들이 믿기

원하는 것을 확증하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기만의 토대이다."


   맞습니다. 진실로 이것 때문에 다수의 교수

들과 목사들이 비성경적인 교리와 전통에 속았

고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내가 아는 것과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옛

부대가 되지 말고, 몰랐던 것은 배우고 잘못 알

았던 것은 고칠 수 있는 새 부대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진짜 성경적인 사역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교리나 전통에 매이지

않고 성경을 기준 삼고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

즉 새부대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대적으로 놀랍게 사용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새 부대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과 새 부대와 같은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교단적이지 않고 초교파적인

사람과 교회, 교리적이지 않고 성경적인 사람

과 교회, 전통적이지 않고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

하심에 민감한 사람과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수용력이 커서 성경적인

진리와 사역이라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진심

으로 여러분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베뢰아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사도행전 17:11-12)


   여러분이여, 반드시 이 말씀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

분이 아는 것이 전부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

다. 여러분이 아는 것이 기준이 아니고 다소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뵈뢰아

사람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배워야합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참되고 바른,

그리고 원만한 성경의 이해에 이르러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제 머리가 좋아서도, 연구

를 많이 해서도 아닙니다. 지금 강조하고 있는

새 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져서 일찌감치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담대하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새 부대와 같은 공정하고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설교를 들

어도 다른 사람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분별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배우지 못하는 진리

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

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

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행전 26:29)


   저는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양심상 바울

처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새 부대와 같

은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저처럼 새 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새 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이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깊이 인식하게 되

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에 제가 인터넷에 올

"저는 제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굉장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길 원합니다.


   만약 어떤 설교자가 지금까지 여러번에 걸쳐

페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는 진

정한 제자가 아닙니다. 나는 장로교에서 자랐고

장로교가 무조건 혹은 다 옳다, 이건 아닙니다.

나는 침례교에서 자랐고 침례교가 무조건 혹은

다 옳다, 이건 아닙니다. 무슨 목사가 그래요? 

계속 성장하면서 자기가 잘못 알았던 것을 바르

게 알고, 무엇이 성경적인가를 깨닫게 되어, 

계속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점점 더 

온전한 성경적인 진리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이 그냥 교리대

로 설교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목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목사는 교단의 교리대로 설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자요, 적어도 신학에 있어서는 

완고한 바리새인입니다.

   목회자들이 10년 20년, 심지어는 50년 원로

목사가 될 때까지 목회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

까지 똑같은 말만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

다. 그사람은 제자가 아니고 교만한 자입니다.

적어도 가르침에 있어서는 바리새적인 목사입

니다. 그의 삶은 진실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의 인격은 훌륭할 수 있어도, 적어도 말씀에

있어서는 바리새인입니다.

   제자는 계속해서 배우고 발전합니다. 저는

뭐 태어날 때부터 '사도와 선지자가 지금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 줄 아십니까? 저도 사도

와 선지자가 지금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목사님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교단에서 그렇

게 말하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가 무슨 특별한 계시를 받아서 지금은 사도와

선지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케네스 해긴, 피터 와그너, 후안 까를로스 오르

띠즈 그 외 많은 저명한 목사님들의 책을 읽다

가 사도와 선지자가 지금도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끝난 줄 알았는

데... 정말일까?' 하고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성경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와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 성구

들이 실제로는 그런 의미가 아님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도와 선지

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성경으로 완벽하게 설명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주장은 지극히 성경

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그렇게 제 견해를 바꾸었습

니다. 그렇게 숱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했

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직 제자만이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습

니다. 교리대로 죽을 때까지 설교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자기도 배우지

않으면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까? 자신

은 오만해서 십 년이 가도 배우는 것이 없으면

서 무슨 자격으로 남을 가르칩니까?

   참된 제자는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제자는 성장하면

서 점점 자기가 잘못 안 것을 깨닫고 그것을

고칩니다.

   '아~ 믿기만 하면 다 천국 갈 줄 알았는데,

회개가 없이는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이구나.'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로 버림받지 않는

줄 알았는데 버림받을 수도 있구나.'

   '계시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계시가 존재하네!

요엘이 말한 것처럼 꿈과 환상과 예언이 오늘

날도 존재하는구나.'

   '지금은 사도와 선지자가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구나.'

   '입신은 다 이상한 건 줄 알았는데 아무거나

믿으면 안 되지만 성경적인 바른 입신들도 있

구나'

   이렇게 점점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해서

교리가 아니라 진짜 성경적이 되어 갑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패러

임의 전환이 전혀 없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

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런 교수들을 믿지 마십시

오. 그런 목사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런 이단사

꾼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교만하고 

무지한 자들입니다.

   이제, 다른 얘기 같지만 같은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제가 전하는 메세지에 대해서 굉장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영성이 뛰

어난 것도 아닌데, 제가 가진 확신과 담대함과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는

다음 3가지에 기초해서 자신감을 갖습니다.


   1. 그것은 제가 전하는 내용이 성경의 문맥

에서 벗어남이 없는 성경적인 진리이기 때문입

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교리적이거나 전통적인 

과 일부 다릅니다. 그래서 저를 반대하는 사람

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의 무지가 확연하게 들

납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

을 경험해 온 사람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단사냥

꾼들과 교단들이 제가 가르치는 것이 잘못 되었

다는 것을 성경으로 입증했다면 그들의 말을 

허히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저는 폐쇄적인 사람

이 아닙니다. 저의 주장을 무조건 고수하는 사람

이 아닙니다. 이단사냥꾼이 지적하든, 교단이 지

적하든 성경적으로 옳으면 즉각 인정하고 받아

들일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

면 그들의 주장이 성경의 문맥과 맞지 않습니다.

너무 엉터리이고 허점투성이입니다. 그냥 꽉 막

힌 교리적인 말이고, 자기가 맹신하고 있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들은 저의 주장이 성경적인가

아닌가에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냥 교리

에 호소합니다. 그냥 전통에 호소합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아는 것에 호소할 뿐, 성경

로 자신들의 주장을 조리 있게 증명하지도 

못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증명했

다면, 저는 즉시 저의 견해를 바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억지를 부렸습니다. 말도 안되

는 무식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성경의 문맥에 

벗어나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들은 감투나 

하나씩 쓰고 거들먹거리고 있지 실제로는 놀랄 

정도로 무식한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도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저 

교리와 전통만 알고 성경을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무엇을 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개처럼 짖고 떠드는 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의 글을 보면, 책을 얼마나 편협하고 

좁게 읽었는지, 이미 다른 책에서 완전하게 성경

으로 증명 되고 입증 된 것도 모르고 어리석게

문제 제기를 합니다. 무슨 100년 전, 50년 전의

고리타분한 교리를 갖다가 그것이 진리의 전부

인 것처럼 앵무새처럼 떠들어댑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제정신으

로 제가 어떻게 그들의 말을 인정할 수 있겠습

니까?

   하지만, 저는 그들과 다릅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철저하게 성경의 문맥에 근거한 것들입니

다. 성경적으로, 문맥적으로 정확하기 때문에

강조한 것들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교리가 

진리가 아니고, 이단사냥꾼들이 진리가 아니고,

교단이 진리가 아니고 성경이 진리입니다. 또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하는 것은 성경적입니

다. 성경의 문맥에서 벗어남이 없습니다.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이 성경적입니

다. 이것이 제가 담대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과 더불어 내 영이 

이것이 진리라고 속에서 계속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확신과 담대함은 성경에서 오고

또 성령께로부터 옵니다. 제가 가진 담대함은

저의 머리가 아니라 제 영으로부터 올라옵니다.

바울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8:16)

라고 했는데, 제가 성경을 깨달을 때마다, 설교

할 때마다, 책을 쓸 때마다 성령께서 제 안에서 

강력하게 증거 하십니다. 

   '그게 맞아! 그것이 참 진리다!'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옳은거야.'

하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증거 하십니다. 

성경에 성령이 증거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

므로 이런 증거는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 영이 이렇

게 화답합니다. 

   '아멘! 성령님, 이것은 정말 참 진리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제 영(양심)이 제가 전하는 것

이 진리라는 것을 증거해줍니다. 두 증인이 함께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혼은 맞지 않아도 자기가 아는  

것을 옳다고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은 혼이 모르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 진짜 맞는 것에만 동의합니다. 그래서 방언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혼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영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4:2). 그리고 그래서 방언을 통변하면 그것이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14:5). 즉 그것이

사람의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증거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저의 설교나 책에 대하여 단순히 이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증거를 갖고 있습

니다. 성령이 제 영에 자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좀 과격하긴 해. 말을 자주 함부로 하기

도 하지. 언제 고칠 거니? 그러나 네가 말하는 

것은 진리다. 겸손한 자는 그 말을 들을 것이다.

네가 쓰는 책도 진리다. 그것은 참된 것이다.'

   그 다음에 내 혼이 아니라 내 영이 말합니다.

   '이게 진짜야. 이것은 제대로 분별한거야.

이게 바로 본 거야. 성경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거야!' 이렇게 제가 가진 확신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령께로부터 나옵니다. 제 확신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영으로부터 확신이 올라오기 때문

에 누가 뭐래도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제 안에서 제가 설교할 때, 책을 쓸

때 제 영에 '이거야.' 하고, 내 영도 '이거다.

이것이 옿은 것이다. 이것이 바른 것이다.'

라고 증거 합니다. 성령과 내 영이 함께 '이게

옳은 거야. 이게 바른 거야. 이게 진리야. 이거

진짜야. 담대하라. 타협하지 말아라. 목숨을 

걸어라. 이것이 진리다. 이 진리가 교회들을 자

유케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담대

한 것입니다. 신학박사나 교수들의 말은 틀릴

수 있어도 성령님은 안 틀립니다. 사람의 머리는

틀릴 수 있어도 영은 안 틀립니다. 그래서 제가

그토록 많은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강하고 담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입니

다.


   3. 제가 가르치는 내용은 단지 저의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 수십 년간 열린 마음으로

동서고금의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의 책들

을 섭렵하면서 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설교나 책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저의 견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저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제가 깨달은 것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의 하나님이 강력하게 사용했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책을 섭렵하면서 저는 배웠

습니다. 저는 배웠고 분별했고 성경적인 것들을

흡수했습니다. 그것이 축적되고 또 축적되어서

나온 것이 제 책과 설교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지금 설교하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니고, 제자가 되어 열린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동서고금의 하나님의 위대한 사

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입니다. 저를 공격

하는 사람들이 설교에서 인용하는 그분들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들이 위인이라고 말하는 그분

들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들의 이름

만 알지 그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설교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분들의 책을 실제로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저같이 광범위한 

독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제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어떤 것은 어거스틴

게서 왔고, 어떤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왔

고, 어떤 것은 존 웨슬리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찰스피니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찰스 스펄전

게서 왔고, 어떤 것은 토마스 왓슨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존 라일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디 엘 무디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에이든 토저

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찰스 하지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캐더린 쿨만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썬다 싱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케네스 해긴

게서 왔고, 어떤 것은 로이드 존즈에게서 왔고,

어떤 것은 존 스토트에게서 왔고, 어떤것은

릭 조이너에게서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주장을 무턱대고 다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면서 성경적

인 것들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저와 싸우고 있는 줄 아는데

아닙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그분들과 싸우

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한 그분들을 정죄하고 있

는 것입니다. 무슨 얘긴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기준이 돼서,

자기 것만 주장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목사

들과 다릅니다. 답답할 정도로 종교적이고 교리

적인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저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도 압니다. 그래서 일찌감

치 성령님을 의지했습니다. 일찌감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으

로 배워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을 열린 마음으

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책들을 읽으며 계속해서 

배우고 또 배우고, 내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치고,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을 기준삼아 분별하고 배우면서 살아왔습

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저의 설교와 책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큰믿음

교회를 공격하는 교단이나 목사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기독교서적을 고전부터 열린 마

음으로 제대로 통독했더라면 절대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식하고 오만해서 그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참으로

제자로서 지난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배웠습니다. 공정

하게 성경으로 분별하고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잘못 된 생각들을 내려놓고 내려놓았

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규명한 진리들을 받아들이고 받아들

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교수들과 

목회자들은 저와 같은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

다. 예외적으로 소수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저와 같은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

국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을 욕심은 있엇지만, 

저와 같이 할 수 있는 겸손이 그들 속에 없었습

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평가했습니

다. 제가 저를 바라보았던 시각이 그들에겐 없

었습니다. 그들은 저처럼 성령님을 앙망하지 

않았습니다. 열린 마음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

다. 그들은 자기 교단의 교리가 무조건 옳다고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정통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교만 때문에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처럼 제가 속해있는 교단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내가 속해있더라도 우리 교단은 그냥 많은 교단

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저는 제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한 사람일뿐이며, 사람 생각은 여러 가지이기 때

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 옳고 성령님만

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무엇이 옳은가를 알기 위해서 열린 마음으

로 기도하고, 씨름하고, 독서하고, 매달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다른 목사님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지적인 신학자들과

강해설교자들의 책이나 읽고, 그보다 몇배나 더

깊고 정확하게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존 웨슬리와 찰스

피니의 책을 한 권이라도 실제로 읽은 신학자

와 목사님들이 얼마나 적은 지 아십니까?

놀랄 정도로 적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신학자

와 목사님들이 케네스 해긴 목사님과 릭 조이너

목사님을 모르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그보

다 덜 중요한 강해설교 책만 읽었습니다. 그들은

덜 중요한 지적인 책들만 읽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 성경과 다르게 알고 있고 무지한 것

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자들의 비난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교단이 저더

러 이단이라 하든 삼단이라 하든 제가 왜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한, 그런 무지하고 

완고한 사람들의 평가나 비난을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세상

모든 학교는 졸업이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는 졸업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이고 천국

에 가서도 영원히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제자 됨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죽는 날까지

겸손한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배워야합니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잘못 알았던 것이 있으면

기꺼이 인정하고 고쳐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

제자가 되고, 진짜 배울 수 있고, 진짜 성경적이

될 수 있습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