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 작은 천국의 도서관 ▤/♥ 변승우 목사님 글 1

[할렐루야!] 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5. 8. 3. 18:58




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

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칼빈의 사상에 의하면 

이 부분이 은혜를 받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예를들어, 칼빈주의자이지만 제가 존경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은혜를 참된 은혜와 거짓 은혜로 

구분했습니다. 그 부분은 거짓 은혜는 지성과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의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새로

운 것을 깨닫고 감동을 받은 후에 "은혜 많이 받았습

니다."하고 인사하는데 그것이 거짓 은혜일 수 있

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참된 은혜를 설명하기를 "은혜의 

직접인 좌소는 의지나 성향이다... 모든 참된 은혜

는 실제를 유발 한다."고 썼습니다. 참된 은혜는 의지

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깨닫거나 깊은 감동을 받았

다고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고 인격과 생활이 달라져

야 참 은를 받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견해는 얼른 듣기에는 매우 통찰력 있어 보이

고 매력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 

사상으로 인해 왜곡된 견해입니다. 물론 은혜의 목적

은 의지의 변화에 있습니다. 그러나 의지에 직접 영향

을 행사하는 은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은혜

가 강하게 임해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어지지 않습

니다. 인간은 계속 자기의 의지를 행사할 수 있으며 

또 행사해야만 합니다. 결코 한 순간이라도 은혜가 

인간의 의지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자유행위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직접

적으로 의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인격을 말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은혜는 사고 

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은혜는 간접적입니다. 간접적으로 의지에 영향

을 행사합니다. 즉 돕는 역할을 하지 대신하는 역할

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

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


   보십시오. "돕는 은혜"입니다. 결코 '대신하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점에 주목하면 '왜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으나 지식과 감정에만 영향을 받고 어떤 사

람은 의지에까지 영향을 받는가? 즉 변화되는가?

라는 의문은 자연히 해결됩니다. 그것은 은혜의 차이

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차이입니다. 은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본문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

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기서 바울은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헛되지 않다. 반드시 그 사람을 변화시킨

다. 이런 것이 바로 참된 은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헛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고린도후서 6장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보십시오. 은혜 자체는 참 은혜인데 그 은혜를 

헛되게 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참 은혜와 

거짓은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

입니다. 모두 참 은혜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자유의

지를 대신하거나 강제로 장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에 사람의 반응에 따라 은혜가 헛될 수도 있고 헛되

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려면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라고 바울이 고백한대로 하나

님의 은혜와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울 자신의 

을 통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롬 8: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

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에 하려 하심

이니라."


   저는 항상, 이 구절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의 법"

의 구체적인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야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새로운 

존재의 법 즉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본성을 의미합

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을 뜻합니다. 이 새로운 본성

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류에게 임한 죄성의 법 즉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즉 죄의 

종된 상태에서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 율법의 요구인 

거룩과 사랑, 그리고 주님을 닮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

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은혜만으로는 안 되고 은혜와 협력할 때 주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에 더욱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

다.


   갈 5:16-2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

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

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

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

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

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

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나온는 "육체의 소욕"은 아담에게 

물려 받은 죄성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성령의 소욕"

은 우리를 거듭 나게 한 성령으로터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면서 만들

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하는 소원입니다

(빌 2:13).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만으로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빌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

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

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우리의 의지를 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

지 않아 육체의 현저한 일들을 물리치고 성령의 

매를 맺을 수 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존 비비어 목사님의 경험적인 간증에도 매우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1979년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

했고 예수님의 새로운 본성의 실체를 경험했다. 

내 삶은 변했다.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

다. 전에는 술고래인 뱃사람처럼 입에 욕을 달고 

살았지만 이제 말버릇도 깨끗해졌다. 하나님의 말씀

을 읽고 묵상하고 내 삶에 선포하는 사이 다른 죄의 

습관들도 차츰 사라졌다.

   그러나 쉽게 떨어지지 않는 죄의 영역이 하나 

있었다. 나는 정욕으로 힘들어 했고 포르노에 독 

되어 있었다. 포르노를 보면 정신없이 빨려 들어 

갔다. 해방된 기간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쪽으로 기울었다. 정욕이 내 영혼을 바짝 

틀어쥐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1985년, 일상에서 벗어나 장기간 기도할 수 있도

록 어떤 사람이 자신의 별장을 내주었다. 나흘간의 

금식이 끝나던 1985년 5월 6일, 기도의 사투 끝에 

나는 포르노와 정욕의 아성에서 해방되었다. 감사

게도 그 해방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포르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뒤로도 

나는 여전히 욕심을 물리쳐야 했다. 5월 6일 전까

지는 아무리 물리치려해도 소용없는 것 같았다. 

5월 6일 후로는 물리치는 게 가능해졌다. 그래도 

내 쪽에서 은혜와 협력하여, 포르노를 보려는 충동

을 격퇴해야 했다. 처절한 금식기도 후로 포르노는 

나에게 그 위력을 잃었지만 그래도 나는 단호히 

유혹을 리쳐야 했다.

   그 뒤로 나는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사고에 흠뻑 배어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욕심에 변화가 찾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억지로 포르노에서 눈을 돌릴 필요가 없

고 그냥 포르노가 싫어졌다. 어쩌다 성적인 이미지

가 눈앞에 지나가면 화면 속의 여자를 누군가의 

어린 딸로 보았다. 그 소중한 인생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에서 한낱 

덩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슬펐다. 하나님의 은혜

는 나를 속속들이, 철저히 바꾸어놓았다. 사고의 

영이 새롭게 되었고 나는 정말 자유를 얻었다. 

내 감각들도 그분의 은혜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


   이처럼 존 비비어는 이런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간증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의 은혜가 아니면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

가 임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마 16:24)고 

하셨고,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인내로 

실 하는 자"(눅 8:15)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참고 선을 행하여"(롬 2:7)라고 말했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 9:27)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으므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진리에 주목하면, 왜 전에 술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등으로 폐인이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변화되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간증을 하고 다니다가 몇 해 후 다시 과거

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때 그들이 은혜의 

권능을 실제로 체험했으나 그 은혜와 협력하는 일을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는 말씀은 

실제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여 육체의 

현저한 일들을 물리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

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라고 

바울이 경고한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전에 나오는 말씀

에도 이 진리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갈 5:13-15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

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까 조심하라."


   바울은 이 말을 "형제들"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들에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구원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멸망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물고 뜯으면 멸망할 수 있다고 분명

게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이 아니라 웨슬리가 

옳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할 뿐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성령의 열매

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듯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느냐?"라는 밥존스 

목사님의 간증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간증에 

나오는 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 자만 천국에 들어

갑니다(요일 3:14-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

길 바랍니다.



- 변승우 목사님의 [할렐루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