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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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놀라운 주의 사랑 2016. 1. 19. 22:59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하나님의 계들이 항상 우리에게 기쁨은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선합니다.

하나님의 계획들이 언제나 즐거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온전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로마서 12:2)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하고 온전한 것임을 알게 되면 그로 인해

우리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도구로

드릴 때, 하나님의 게획들은 그들을 고통이나 시련 가운데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신의 안일을 생각지 않으시고 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으며,

그로 인해 친히 심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마태복음 26:38)고 말씀하신 후, 이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솔직하고 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값이 있습니다. 순종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를 최전방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위험, 눈물, 고통 등으로부터 면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눈물과

고난 저 너머에는, 답을 알 수 없는 의문 저 너머에는, 고통스런 전투 저

너머에는,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선하며 온전합니다.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님이 당하실 고난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疾苦)를 당케 하셨은즉...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이사야 53:10-11).

예수님의 상함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저 너머로 하나님의 목적을 보셨고, 그리고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통해 성취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설명하셔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종종 그러셨듯이 흘끗 보여 주시기도 하지만, 대개는 설명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7 참조).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사람으로 요셉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12명의

아들 가운데 11번째였습니다. 둘째, 이것이 첫 번째보다 더 불리한 점으로,

형들이 그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밤에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의 미래에 대해 흘끗 보여

주셨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형들과 함께 들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는데, 갑자기 요셉의 곡식 단은 벌떡 일어서고 나머지 곡식 단들은

그의 곡식 단 앞에 굽혀 절을 했습니다. 후에 그는 다시 꿈을 꾸게 되었는데,

먼저 꾼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그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 꿈 얘기를 했는데, 이 꿈이 암시

하는 것은 어느 날엔가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이로 인해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으며, 그를

없애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이 아버지

심부름 차 갔는데,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노예 시장에서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준 채색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신 후 집으로

가져가 아버지에게 보이며 요셉이 맹수에게 먹혔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야곱이 슬퍼할 때 요셉의 형들은 아마도 

억지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팔아서 번 은

이십 개가 여전히 그들 주머니 속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요셉은 열 일곱

살이었는데, 이미 그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창세기 41:38)

이라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요셉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에게 매력을 느꼈는데, 이는 다른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녀는 요셉을 유혹하려고 애를 쓰다가, 어느 날 요셉이 혼자 집에 있을 때

그를 붙잡고 동침하자고 요구했으나 요셉은 자기 겉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

두고 도망했습니다. 보디발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요셉이 자기를 욕

보이려 했다고 거짓말로 고했습니다. 화가난 보디발은 요셉을 옥에 가두었

습니다.


요셉은 여러 해 동안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팔린 지 14년 후,

서른 살이 된 요셉은 바로가 꾼 생생한 꿈을 해석할 기회가 생겨서 바로 

앞에 부름받았습니다. 그 꿈은 그때까지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 41: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의

해석을 요셉에게 보이셨고, 요셉은 바로 앞에서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앞으로 7년 동안 풍년이 들고 이어서 7년 동안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풍년이 들 동안 기근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애굽에서 바로 다음 가는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 7년

동안 요셉은 이어서 들이닥칠 기근에 대비했습니다.


기근은 넓은 지역에 임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야곱은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곡식을 사러 아들들을 보냈습니다. 

애굽에 도착한 그들은 요셉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서른 아홉

살이 되었으며, 형들에 의해 팔린 지도 대략 22년이 되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자신이 그들의 동생임을 밝히고,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

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세기 45:5-8)고 말했습니다.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 자기들이 이전에 요셉에게 한 몹쓸 짓

때문에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때,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창세기 50:20)고 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재앙으로 보이는 것들 너머로 요셉은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았습니다.


누가 감방에 있는 요셉에게 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28절 참조)는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를 말해보십시오. 요셉은 아마도 그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볼 수 있는 한, 아무것도 제대로

풀린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한창 시절의 대부분을 노예로, 그리고 짓지도

않은 죄로 인해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요셉의 집에서는 어떠했겠습니까? 요셉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아버지 야곱의 찢겨진 마음은 결코 아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아마도 "당신은 우리 아버지의 그 슬픔을 선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요 셉은 전체 그림을 몰랐으나, 전체

그림을 알기 시작했을 때는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하시는 어떤 것에 대해 설명을 하셔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때대로 우리는 이생에서는 전혀 설명을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겪은 구약의 인물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당시에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 시작 되었을 때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는 일은 궁극적으로 선을 이룹니다.


선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반드시 나를 위해 선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다 넓은 안목에서 보아야 하며, 그것을 우리 자신의

안락이나 선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것이 다른 사람의 선을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선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 때는, 

그것이 또한 우리 자신의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하나님께 굴복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안락해지고

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어려움들이 면제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에 대비하여 무장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것도 자기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능히 인생을 해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안락이나 편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 

목적에서 효과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과 눈물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 선하고 

온전하고 기쁨을 주는 어떤 것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찰스 프라이스의 [진정한 그리스도인] 중에서...